오창석의 들춰보기-피식대학과 ‘무한도전’ 세대의 역습[문화칼럼]
“피식대학과 ‘무한도전’ 세대의 역습”
나는 스스로를 ‘무한도전’ 세대라고 부른다. ‘무한도전’이 2006년에 시작해서 2018년에 종영했으니 1986년인 내 인생에 빗대어 보면, 대학교 2학년을 거르고 군입대를 한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던 2018년까지, 대학 생활 전체와 사회생활 초반을 함께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MBC의 ‘무한도전’ 공식 홈페이지에 지금도 남아있는 소개 글을 보면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는 남자들이 매주 새로운 상황 속에서 펼치는 좌충우돌 도전기’다. ‘무한도전’의 처음은 실제 평균이하처럼 보였다. 지금의 무한도전 멤버들의 인기도 위상도 처음에는 일반 국민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였다는 것이다. 업그레이드의 큰 계기는 멤버들의 댄스 스포츠 도전기, 정확한 특집 명칭은 ‘쉘 위 댄스 특집’이었다. 그해 무한도전 멤버들은 ‘MBC 연예대상’ 역사상 첫 프로그램 단체 수상을 하며 평균 이하를 뚫고 나와버렸다.
어느 순간 평균 이하를 뛰어넘어 평균 이상을 상회하자 봅슬레이와 같은 훨씬 더 난이도가 높은 것들에 도전하기 시작했고, 멤버들과 제작진들은 영리하게 발전해나갔다. 난 코미디의 끝판왕은 ‘공감대 형성’이라고 생각한다. 출연자들의 뛰어난 개인기도 중요하지만 결국 방송은 출연자들의 액션보다는 시청자들의 ‘리액션’이 더 중요하다. 수많은 역주행 영상들은 하나같이 리액션이 뛰어난 순간들이었다.
개인적으로 꼽는 ‘무한도전’ 에피소드 중 최고의 공감대 형성은 무한상사라고 생각한다. 출연자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한채로 회사의 직급만 부여해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황들을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이것이 과연 고민거리가 될까?’ 싶은 정도의 간단한 점심 메뉴 고르기 같은 상황들이 직장인들에겐 실제로 미묘한 골칫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그속에서 멤버들은 유능하게 웃음을 뽑아내었다. 단체 회식에서 일어나는 하극상은 덤.
피식대학은 그 리액션의 세계를 정통으로 이어받았다. 특정 세대에 국한될지도 모르는 ‘05학번 이즈 히어’와 ‘05학번 이즈 백’을 포함해 등산만 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을 담은 ‘한사랑 산악회’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우리 삶속에서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일들을 담아내었다. 그리고 ‘무한도전’처럼 영리하게 웃음을 뽑아내었다. 비트박스나 춤, 노래와 같이 특출난 개인기가 없어보이지만 특정한 유형을 잡아내는 센스는 정확하게 특출난 개인기였다. 이른바 부캐의 전성시대를 계승하며 발전해나가고 있다.
부캐를 통해 동일한 출연자의 새로운 세계관 연출뿐만 아니라 이들이 영리한 두 번째 이유는 영어다.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데일리 코리안은 출연자들이 나와 영어로 한국말을 소개하는 랭귀지 리버스(Language Reverse)를 통해 상황적 개그를 보여준다. 중요한 건 그들이 충분히 기본적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어쩌면 진짜 그걸 통해 재미를 느끼는 해외 한국 팬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케이팝과 케이무비를 넘어 K-Comedy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것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을까. 지난 5월 2일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를 홍보하기 위해 주연 크리스 프랫과 감독 제임스 건이 ‘피식쇼’에 직접 출연하여 현재 조회수를 110만을 가뿐히 넘겼다. 지구촌 최고의 쇼를 표방하며 영어를 통해 토크쇼를 진행하던 이들이 진짜 헐리웃을 초대한 것이다. 사실 무한도전 세대에게는 이러한 굵직한 내한은 당연히 ‘무한도전’ 또는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가 담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판게아가 대륙이동설을 통하는 것처럼, 피식대학이 예능 파워의 대륙을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한도전에서 무언가를 유행시키면 모든 인터넷이 따라하던 시절이 아니라 피식대학에서 무언가가 출발해 기성 미디어로 흘러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제 5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예능 작품상을 피식대학의 ‘피식쇼’가 수상했다. TV송출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 TV는 지상파의 송출보다는 TV라는 기계를 통한 송출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매체의 전환보다는 틀에 박힌 것에서 자유로운의 이동, 특정 방송사의 간택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과 자발적 창작으로의 이동이다.
TV 송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TV부문 상을 준 백상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피식대학이 오히려 이 상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한 시도와 자유로움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Psik Univ. Pom Michutda”
▲오창석 ▲작가 ▲대중문화칼럼니스트
정리: 이선명
<오창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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