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옛 신문광고] '여원'과 출판인 김익달

손성진 2023. 5. 1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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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최초의 여성잡지 '여원'과 학생을 위한 종합잡지 '학원'을 발행한 김익달(1916~1985)이라는 인물이 있다.

일본 와세다대학을 수료하고 대양출판사를 설립해 3000여종의 책을 펴낸 1세대 출판인이라는 것만으로는 김익달 선생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선생이 '학원'을 창간한 것은 전쟁 중이던 1952년 대구에서였다.

선생의 도움으로 사회 각계에 진출한 후학들이 장학회를 '학원밀알장학재단'으로 바꿔 선생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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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최초의 여성잡지 '여원'과 학생을 위한 종합잡지 '학원'을 발행한 김익달(1916~1985)이라는 인물이 있다. 일본 와세다대학을 수료하고 대양출판사를 설립해 3000여종의 책을 펴낸 1세대 출판인이라는 것만으로는 김익달 선생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선생은 양심적 출판인으로 존경을 받았으며, 특히 학생과 농촌을 위한 출판에 노력을 기울여 우리 출판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선생이 '학원'을 창간한 것은 전쟁 중이던 1952년 대구에서였다. 그 어렵던 시절에 학원은 10만부나 팔렸다. 학원 문단을 통해 황동규, 마종기, 유경환 등 여러 문인이 배출됐다. 선생의 호(號)도 '학원'(學園)이다. 사진은 조선일보 1955년 8월 28일자에 나온 여원의 창간 광고다. 이어 고교생 수험지 '진학'(1956),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세계대백과사전'(1958)을 펴냈다. 여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는 여성잡지 '주부생활'을 창간하고 1969년 독서신문 초대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여원은 1970년 4월호로 통권 175호를 내고 폐간됐는데 이후 같은 이름의 여성 잡지가 다시 나왔고, 김재원 시인이 발행인을 맡았다.

선생이 더욱 힘을 쏟은 것은 장학사업이다. 학원을 창간한 이듬해 '학원장학회'를 설립, 생전에 400여명에게 고교부터 대학까지 학자금을 전액 지원했다.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수많은 인재들이 선생의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전국에서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서울에서 시험을 치러 장학생을 선발했다고 한다. 시골에서 오는 학생에겐 왕복 여비, 숙박비, 잡비까지 주며 자상하게 배려했다. 출판사 경영이 어려워 돈이 없을 때는 빌려서라도 장학금을 주었다고 한다. "사장들이 도망가기에 바쁜 6·25 아침 사원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초창기 주부생활 주식의 3분의 2를 사환을 포함한 사원에게 나누어 준 사람, 자기 밑에서 일하던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집 한 채를 사준 사람". 그가 세상을 떠나자 어느 신문은 이렇게 부고를 썼다. 선생의 도움으로 사회 각계에 진출한 후학들이 장학회를 '학원밀알장학재단'으로 바꿔 선생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 출판을 천직으로 여기고 평생을 바쳤지만 어려워져 가던 출판환경으로 가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장남 김영수는 아버지 뜻을 받들어 1989년 종합일간지 '민주일보'를 창간했지만 2년도 안 돼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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