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윤리위원이 라덕연 소개했는데" 매각사기 당했다는 한 언론사의 비명

임지수 기자 2023. 5. 1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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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법조·언론·정재계 유력인사
한꺼번에 거론되는 역대급 사건
주가조작단 배후 세력 책임 규명돼야
JTBC가 다단계 주가조작단의 불법 수수료 창구 중 하나로 지목한 온라인 언론사 편집국장이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문순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이 이 언론사로부터 고문료를 받아갔다는 사실을 보도한 다음날(9일)이었습니다.

편집국장 A씨는 "국회 공직윤리위원 장모씨 소개로 라덕연 대표와 김문순 이사장을 소개받았다"며 "매각사기를 당해 두 달 만에 인생이 망가졌다"고 했습니다.

라 씨와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주가조작단 핵심 인사가 사내이사로, 현직 국회 윤리위원이 감사로, 전직 일간지 발행인이 고문으로 이름을 올린 이 언론사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 국회 윤리위원이 데려온 라덕연…8500만원대 인테리어 비용도 배너 광고로 충당

A국장은 기자 시절 식약처 간부 출신이었던 장 씨를 취재원으로 알게 돼 두터운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올해 초 3~4년 만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매체를 혹시 매각할 데가 있느냐. 언론사를 사서 크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물었을 때 의심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며칠 뒤 장 씨는 매체를 사들이고 싶어하는 투자자라며 라덕연 대표와의 만남 자리를 주선했습니다. A씨에 따르면 라 대표는 당시 '얍TV 회장'으로 적힌 명함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A씨는 투자 컨설팅 관련업자인 줄 몰랐다며 "투자 컨설팅의 컨 자라고 들었다면 의심스러워서 계약 안 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나중엔 임창정 회사도 인수했다고 했다"며 "종합 매체를 만들려나 보다" 생각했다는 겁니다.

라 대표는 A씨에게 언론사 유상증자를 통해 10억 자본금을 넣는 형태로 투자하겠다면서 배너 광고로 돈을 벌겠단 계획을 밝혔습니다. A씨는 "인터넷 매체 배너 광고가 녹록치 않은데, 라 대표가 병원들 쪽에서 광고주가 엄청나게 많으니 그런 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며 "나중에 상장까지 시켜주겠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A씨는 회사를 빠른 속도로 키우는 과정에서 70~80평대 사무실을 마련하고 8000만원대 인테리어 공사를 했는데, 이때 비용도 배너 광고로 메울 수 있었을 만큼 광고가 잘 들어왔다고 기억합니다. JTBC는 주가조작단이 이 배너광고비를 통해 의사 등 투자자들이 수익을 낼 때 내는 불법 수수료를 돌려 받아온 정황에 대해 보도한 바 있습니다. A씨는 이같은 내막을 전혀 몰랐고 수완이 좋다고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주가조작단이 A씨 언론사에 앞서 수수료 창구로 활용한 정황이 포착된 또다른 온라인 매체 내부 회계자료.
지난 3월 라 대표 측은 10억원을 통해 언론사 지분 99.9%를 사들였습니다. 언론사 김모 대표 명의로 증권계좌를 만들어 이 계좌로 돈을 운영하겠다 했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다른 투자자들처럼 똑같이 휴대폰을 맡겨 투자를 일임했지만 A씨는 이 계좌를 통해 신용거래가 이뤄지고 있단 것을 전혀 몰랐고, 주가 폭락 이후에야 억대 빚이 찍힌 잔고를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 장모 씨가 조선일보 연구소 이사장도 소개…"사무실 위치부터 콘텐츠 방향 등 상의"

국회 윤리위원 장 씨는 언론사를 키워야 한다며 김문순 이사장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발행인을 거친 언론계 원로를 모셔온다는 소식에 고무적이었습니다. A씨는 "김 이사장이 사무실을 어디에서 구하는 것부터 콘텐트를 문화예술 쪽으로 더 넓히자 이런 얘기를 해줬다"고 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이 매체로부터 고문료 500만원을 받았지만, A씨와 성향과 의견 차이가 컸던 나머지 자문 역할을 오래 지속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A씨는 그때에도 김 이사장이 주가조작단 골프업체에서 법인카드를 받아 사용해온 인물이란 점을 몰랐습니다.

이 언론사는 자본금 10억원을 넘기면서 감사를 선임해야 했고, 이 자리에 이름을 올린 건 국회 공직자 윤리위원 장모씨였습니다. 사내이사 자리는 라 씨와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변모 씨 등이 맡았습니다. 장 씨는 앞서 주가조작단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과정에도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로 취재됐습니다. 전현직 공직자들의 부정축재 등 이해충돌과 윤리 문제를 재단해온 장 씨가 얼마나 이들의 불법 정황을 알았고 조직에 관여했는지도 이번 수사를 통해 규명돼야 할 내용입니다.

장 씨는 폭락 이후 A씨에게 연락해 "나도 얘네들이 불법인 줄 몰랐고 미수거래를 신용계좌를 쓰는지도 몰랐다"며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 "죽을 때까지 갚겠다"는 라덕연…폭락 직후에도 유리한 기사 써달라 요청

24일 주가가 폭락하고 나서야 언론사 측에선 상황 파악에 나섰다고 합니다. 일당이 이 언론사 대표 계좌로 신용거래를 몰래 해온 결과 억대 마이너스가 찍힌 사실에 대해 항의하자 라 대표는 "죽을 때까지 평생 어떻게 해서든 갚겠다"고 사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폭락 당일 밤에도 라 대표는 이 언론사를 통해 우호적인 취지의 기사를 써달라고 요청했다는 게 A씨 설명입니다. A씨는 "사건 터졌을 때 8개 종목 그걸 나한테 보내서, 지금 누가 공매도를 때린 것 같으니 좀 알아봐달라"며 취재 요청을 했다는 겁니다.

주가조작단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라덕연 대표 일당은 실제 이 언론사를 크게 키워보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번 사태와 같은 악재가 발생했을 때,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에 힘을 실어줄 매체로 이용하려 했다는 주장입니다. A씨는 "결국은 우리 회사를 통해 또 다른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그런 생각이 드니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습니다.

■ 연예계·정재계·법조·언론계 거물 이름 한꺼번에 거론되는 역대급 사건

JTBC는 지난달 24일 주가 폭락 직후 주가조작단 관련 의혹 보도를 시작한 뒤로, 이번 사건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유력 인사들에 대해 잇따라 보도하고 있습니다. 가수 임창정 씨부터 이중명 아난티 그룹 회장, 박영수 전 특검, 국회 공직자 윤리위원까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큰 파급력을 가지는 이들의 존재는 주가조작단에 대한 투자자들의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주가조작단이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고 세력을 불리는 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실제로 이번 사건의 불법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관여했는지는 수사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앞서 여러 불법 다단계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유명 연예인과 전현직 공직자들은 어김없이 사건을 키운 한 축으로 등장했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앞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유명 인사들이 주가조작 사건의 유용한 도구로 이용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단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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