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수출품 10억弗 '유령 무역'으로 러에 흘러들어갔다

옛 소련국 이용한 밀수출 활발
'가짜 목적지' 적어 세관 신고
전략물자 절반이 중간에 증발

유럽연합(EU)에서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어치 물품이 제재를 뚫고 러시아로 유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러시아 인접국이 EU에 전략 물품을 주문한 뒤 러시아로 밀수출하는 ‘유령 무역’ 방식으로 제재를 우회했다.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등으로 선적한 전략물자(이중용도 물품) 20억달러어치 중 절반이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고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FT는 증발한 전략물자가 러시아에 유입됐다고 전했다. 러시아로 흘러 들어간 품목 대다수는 산업·군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항공기, 광학장비 등이다.

EU가 러시아에 전략물자 수출을 금지하자 러시아가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밀거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옛 소비에트연방(소련) 소속 국가인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등을 활용한 ‘유령 무역’이다. 이들 3개국이 EU에서 수입한 물량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증하면서 의혹을 더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관 신고서에 가짜 목적지를 적는 등 거래원장을 조작하는 수법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원장에서 누락된 규모가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2월 개전 후 13개월 동안 EU 회원국인 리투아니아에서 카자흐스탄에 수출한 품목은 8400만달러어치로 집계됐으나, 막상 카자흐스탄은 1100만달러어치만 수령했다고 기록했다. 7300만달러어치에 달하는 리투아니아 수출품이 유령 무역으로 종적을 감춘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10억달러어치의 EU 수출품이 러시아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EU의 대러시아 제재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EU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점령한 뒤 대러시아 제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유령 무역을 통해 제재를 계속 우회해왔다. 유령 무역은 러시아 경제가 각종 제재에도 무너지지 않은 이유로 꼽힌다. 이 때문에 대러시아 제재 우회로 역할을 하는 국가와 기업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 클래식과 미술의 모든 것 '아르떼'에서 확인하세요
▶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