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나 호텔 같은 시설이 '좋은 돌봄'일까?
[권시정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노인 돌봄의 사회적 수요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5년에 20.6%, 2035년에 30.1%, 2050년에는 40%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좋은 돌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보건복지부가 다음 달부터 노인요양시설을 비롯한 장기요양시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시행규칙을 공포하긴 했지만, CCTV가 좋은 돌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돌봄과 관련된 대표적 통념으로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보다, '진정한 돌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더 좋은 돌봄을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열악한 노동 조건과 저임금 구조 속에서 돌봄 노동자의 '진정성'에 기대어 좋은 돌봄을 상상하는 것만큼 불합리한 것도 없다. 좋은 돌봄에서는 돌봄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형평, 그리고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의 형평이 모두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값비싼 요양시설이 저렴한 요양시설에 비해 더 좋을 것이라는 통념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요양시설 이용료가 높을수록 시설이 고급화되고, 다양한 활동들이 제공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좋은 돌봄은 고급 시설로 단순화될 수 없다. 이러한 통념은 좋은 돌봄에 대한 사회적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은 영국의 양로원 두 곳을 대상으로 한 민족지학적 연구를 통해 돌봄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탐색하고자 한다.(☞ 바로 가기 : 돌봄의 비용: 양로원에서의 돌봄 노동에 대한 민족지학적 연구) 연구자는 이 연구를 위해 800시간 이상의 참여관찰을 2년간 수행했으며, 연구 대상이 된 밀스테드(Millstead)와 쇼어필드(Shorefield) 지역의 양로원에서 12개월간 돌봄 노동자로 일했다. 밀스테드는 2010년 박탈지표에 의하면, 영국에서 박탈 수준이 상위 5%에 해당되는 지역이었다. 반면 쇼어필드는 하위 50%로 박탈 수준이 낮은 지역이었다.
밀스테드의 양로원은 33명의 거주자를 수용하는 민간 요양원으로, 지역 당국이 지불한 주 평균 돌봄 비용은 448파운드였다. 쇼어필드의 양로원은 대규모의 기업형 주택으로, 2013년 1월을 기준으로 99명의 거주자가 있었다. 돌봄 비용은 거주자가 사용하는 방과 거주자의 돌봄 필요에 따라 달랐다. 이곳에서 제공하는 가장 저렴한 돌봄은 직접적인 돌봄을 제외하고 숙박, 식사, 활동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주 평균 750파운드에 달했다. 광고에서는 '호텔 같은' 시설이 강조되었다. 두 양로원의 거주자 대 돌봄 노동자 비율은 주간에는 서로 비슷했고, 야간의 경우 밀스테드에서 다소 낮았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저가의 밀스테드와 고가의 쇼어필드의 양로원은 1) 일상적 업무, 2) 돌봄의 내용과 철학, 3) 돌봄 노동자의 역할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먼저, 일상적 업무 차원에서, 밀프레드와 쇼어필드의 돌봄 노동의 양과 유형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밀스테드 돌봄 노동자들은 식사, 차 마시기와 관련된 돌봄 스케줄을 엄수해야만 했고,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돌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싱글'과 '더블'로 거주자를 분류하고, '더블'이 먼저 식사를 한 후 '싱글'이 식사를 하도록 했다. '싱글'은 한 명의 돌봄 노동자만으로도 돌볼 수 있는 사람을, '더블'은 두 명의 돌봄 노동자가 함께 돌봐야만 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이러한 상징적 분류는 거주자 사이에서도 위계를 만들었다.
반면 쇼어필드 돌봄 노동자들의 일상은 유연했다. 거주자들은 언제, 어디서 식사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었고, 돌봄 노동자들은 이들의 필요와 선호에 따라 일했다. 돌봄 노동자의 주요 임무는 자율적인 소비자(거주자)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돌봄 노동자들의 업무 유연성은 노동자와 관리자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두 양로원의 돌봄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일상적인 업무 방식은 상이했으며, 이는 시간과 인력이라는 자원의 할당 방식과 관련 있었다.
또 다른 차이는 돌봄의 내용과 철학과 관련된 것이다. 밀프레드에서 제공되는 돌봄은 파편화된 양상을 보였다. 돌봄 노동자들은 거주자와 관련된 노트를 기록할 시간과 자원이 없었다. 돌봄 노동자들은 거주자의 개인적 선호는 물론이고, 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다. 가능한 한 빠르고 실용적으로 돌봄 노동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돌봄 노동자들은 업무를 줄이기 위해, 거주자에게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거나 어제 '철저히' 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침대 정돈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도 했는데, 이는 관리자들에 의해 질책을 받았다. 아마도 방문객이나 조사관의 눈에 띄어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구자는 이를 돌봄의 외관이 돌봄의 본질보다 더 중요하게 간주되는 문제라고 해석한다.
반면 쇼어필드에서는 통합적인 돌봄이 제공됐다. 거주자에게 침대에서 씻는 것과 샤워 중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고, 거주자의 선택에 따른다. 거주자를 씻겨준 후에는 크림과 향수를 발라주며 직접 고른 옷을 입혀준다. 돌봄의 단계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주며 5분 가량 앉아 사담을 나눈다. 즉, 쇼어필드의 돌봄 노동자들에게 돌봄이란 물리적인 돌봄 이외에도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의미했다. 이들은 거주자에 대한 정보를 노트에 기록하면서 거주자를 알아갔다. 이러한 관행은 돌봄 노동자들이 전문적 정체성과 거주자들에 대한 공유된 책임감을 갖게 만들었다.
마지막 차이는 돌봄 노동자의 역할의 모호성과 관련된 것이다. 밀프레드의 돌봄 노동자들은 빨래, 청소, 요리, 침실 정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반면 쇼어필드에서는 돌봄 노동자의 역할과 다른 업무 사이의 경계가 명확했다. 쇼어필드의 돌봄 노동자들은 침실 정돈 업무가 맡겨졌을 때, 이는 가사도우미의 역할이라고 말하며 거부했다. 이들은 전문성을 지키기 위해 공통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돌봄 비용과 돌봄의 질, 그리고 돌봄 노동의 조건 간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주의할 점은 저자가 단순히 값비싼 시설의 돌봄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노동자들이 일상적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 업무의 내용, 역할의 경계 문제가 얽혀 있었다. 돌봄 노동자들이 시간에 쫓겨 다방면 노동에 시달릴 때, 돌봄에서 존중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돌봄 노동자의 처우와 역할은 그대로인 채 CCTV를 의무화하는 것만으로 '좋은 돌봄'은 가능해질 수 없다. 돌봄 의존자들이 존중받고 지지받으며 스스로를 가치있는 존재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더 강조되어야 하지만, 현재의 노동 구조와 방식이 유지되는 한, 이른바 '가족 같은' 돌봄은 돌봄 노동자의 착취구조를 공고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사람답게 대우받는 돌봄은 돌봄 노동자를 사람답게 대우할 때 가능하다.
*서지정보
- Johnson, E. K. (2023). The costs of care: An ethnography of care work in residential homes for older people. Sociology of Health & Illness, 45(1), 54-69.
-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full/10.1111/1467-9566.13546
[권시정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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