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된 '친족범죄 면죄부'···가족 인식 시대적 변화 못 따라가
형면제 등 담은 '친족상도례' 조항에
자식 버린 부모·별거 중 배우자가
사기·절도 피해 입혀도 처벌 못해
핵가족화에 '전통적 친족'도 변화
국민 34%가 "3촌까지만 인정"
친고죄도 악용 우려···제도 개선 필요
법 개정안은 번번이 국회 통과 무산
“아내가 상간남에게 제 돈 수천만 원을 빼돌렸습니다. 신고를 하려 했지만 가족이라서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아내는 이미 가족이 아니라 도둑인데···. 우리나라 법은 도둑에게 면죄부를 주는군요. 분통이 터집니다.”
“큰형이 아버지 돈을 수차례 빼돌려 유흥에 탕진했습니다. 원래도 넉넉지 않은 형편이라 가정은 풍비박산 나고 아버지는 형과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습니다. 돈의 일부라도 돌려받기 위해 형을 신고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 법은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법은 살인·폭행·아동학대 등 중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한 가족 간 갈등에 개입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가족의 일은 가족끼리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인식 탓이다. 대표적인 것이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도입된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조항이다.
친족상도례는 형법 제328조 ‘친족 간의 범행과 고소’ 조항을 기본으로 한다. 1항은 가해자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 친족, 동거 가족 및 그 배우자인 경우 형을 면제하며 2항은 그 외 친족 간 범죄의 경우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친고죄)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친족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다. 본래 해당 조항은 권리행사방해죄에 한해 적용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지금은 형법 제344조, 제354조, 제361조, 제365조에도 준용돼 절도, 사기·공갈, 횡령·배임, 장물죄 등 일반적인 재산 범죄로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등 특별법 위반도 대상이다.
문제는 친족상도례 조항이 도입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웃어른’은 점차 사라졌고 개인의 욕심으로 가정이 위태로워지는 경우를 쉽게 목격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에 대한 경제적 학대의 77.5%, 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착취의 19%가 피해자의 친족에 의해 발생했다.
가족의 형태도 크게 바뀌었다. 1970년 전체 가구 중 18.8%였던 직계가족 비율은 2015년 5.3%로 감소한 반면 핵가족은 71.5%에서 81.7%로 확대됐다. 친척 간 교류가 점차 줄어들며 친족의 범위 역시 축소됐다. 친족 범위를 ‘3촌까지’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2010년 18.0%에서 2021년 34.3%로 두 배 가까이 급증하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반면 ‘4촌까지’라는 응답은 45.8%에서 32.6%로 줄었다.
과거의 가족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친족상도례 조항을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조계에서도 친족상도례 조항이 피해의 중대함,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구체적 관계, 피해자의 처벌 의사 등을 모두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식을 버린 부모라도, 이혼소송을 진행하며 별거 중인 배우자가 잘못해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민법상 가족에 해당하지 않는 직계혈족 배우자(비동거), 배우자의 직계혈족(비동거) 등도 마찬가지다.
형법 제328조 2항에 해당되는 친고죄 조항이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친고죄의 경우 피해자가 범인을 인지한 후 6개월 이내에 고소 여부를 결정하지만 가족의 정에 끌려 자칫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의미다. 김광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가해자가 친척이라는 이유로 용서를 구하거나 손실된 재산을 갚아주겠다며 고소를 미뤄달라고 호소해 기간을 넘기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해당 범죄를 친고죄가 아닌 반의사불벌죄로 전환해 고소 기간 제한을 없애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금 사회에서 (친족상도례가) 예전 개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을 축소·폐지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4대 국회 때 친족상도례의 형 면제 조항 적용 여부를 판사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임의적 형 면제)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19대 국회에서도 피성년후견인에 대한 재산 범죄를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개정안이 나왔지만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21년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친족상도례 규정의 전면 폐지를, 같은 당 이병훈 의원은 사기와 공갈, 횡령과 배임 범죄를 친족상도례 대상에서 빼자는 개정안을 냈지만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친족상도례가 폐지될 경우 법·제도상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반론이 있다. 여전히 공권력이 가정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도 존재한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2012년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깨져서는 안 된다’며 친족상도례 규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제도 개선을 위한 절충안도 제시된다.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올 3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가중처벌되는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인 사기·공갈 및 횡령·배임의 죄’와 ‘5명 이상이 공동하여 상습적으로 범한 절도의 죄’ 등을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한 의원은 “친족상도례 법이 오랜 기간 적용돼왔을 뿐 아니라 사법부가 이를 인정해오고 있기 때문에 폐지를 포함한 법 개정에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일부 해악 범죄부터라도 친족상도례 대상에서 제외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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