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꾼' 칼 아이칸, 똑같이 '사냥'당했다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 높은 전설적인 월가 투자자 칼 아이칸이 자신이 공격했던 방법 그대로 똑같이 일격을 당했다. 아이칸 지주회사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의 공매도 보고서가 나온 다음 날 뉴욕 검찰 수사 대상에도 올랐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지면서 일주일 만에 주가가 40% 가까이 폭락했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아이칸의 지주회사 '아이칸엔터프라이즈(IEP)'는 전 거래일보다 15.14% 내린 32.2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주가는 21% 하락하며 30달러 선을 위협받기도 했다. 이달 초 공매도 세력의 공격으로 주가가 40% 가까이 폭락한 뒤 회복세를 보이던 이 회사 주가는 검찰 수사 소식에 또다시 무너졌다. 뉴욕 남부검찰이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힌덴버그리서치의 공매도 보고서 공개 직후부터 IEP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이날 공개된 IEP의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서류에 따르면 보고서 공개 다음 날인 지난 3일 검찰은 회사 측에 자산가치 평가, 기업 지배구조, 배당금 등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다.
IEP는 조사에 협조 중이라면서도 "이번 조사가 우리의 사업, 재정 상태, 운영, 현금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검찰이 자사와 아이칸에 대해 어떠한 청구나 혐의도 부과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2일 공매도 투자 업체 힌덴버그리서치가 공개한 보고서가 발단이 됐다.
힌덴버그는 "나스닥에 상장된 아이칸의 투자 전문 지주회사 IEP의 레버리지가 높고,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며 공매도 투자 중이라고 밝혔다. 힌덴버그는 IEP의 가치가 75% 또는 그 이상 부풀려졌고, 순자산가치 대비 200% 이상 높은 프리미엄에 거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아이칸이 새 투자자에게서 받은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금을 주는 등 사실상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 구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힌덴버그의 공격 이후 IEP 주가는 지금까지 36% 폭락했다.
공매도 공격에 검찰 수사 소식까지 덮치면서 억만장자 아이칸의 자산가치도 100억달러 이상 증발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일 248억달러였던 아이칸의 재산은 10일 만에 136억달러로 45% 줄었다.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전 세계 재산 순위에서도 58위에서 134위로 미끄러졌다. 다른 회사의 지배구조와 경영 투명성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공격했던 행동주의 투자자로 잘 알려진 아이칸이 같은 방식으로 당한 셈이다. 아이칸은 2006년 KT&G를 매수해 2대 주주가 된 후 배당 정책, 자사주 매각 등을 요구하고 주가를 띄운 뒤 10개월 만에 시세차익 1500억원을 얻고 퇴장했던 인물이다.
아이칸이 힌덴버그의 보고서를 '자기 잇속만 차리려는 선동적 주장'이라고 비판하면서 월가에서는 대표 행동주의 투자자와 대표 공매도 전문 투자회사 간 흥미로운 대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아이칸은 기업가치를 명분 삼아 주주 권리를 앞세워 경영에 개입하지만 실제 기업가치가 높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단기 실적 개선과 주가 상승, 배당 확대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CNBC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기업사냥꾼인 아이칸은 1980년대 트랜스월드항공의 적대적 인수를 성공시키고 회사 자산을 빼앗으며 이름을 날렸다"고 꼬집었다.
IEP는 별도의 성명을 통해 힌덴버그 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사실을 호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보고서"라며 "(힌덴버그 창업자인) 네이선 앤더슨은 멋대로 남의 재산을 파괴하고 무고한 시민들에게 해를 입힌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희생자들과 달리 가만히 있지 않고 모든 조치를 취해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칸은 최근 몇 년간 투자부서의 실적이 저조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포트폴리오가 상당한 상승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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