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경제실정에 민심 싸늘 … 에르도안 '20년 철권통치' 벼랑끝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3. 5. 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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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선
'21세기 술탄' 지지율 흔들
최저임금 55% 인상 등
포퓰리즘 공약 쏟아내
'튀르키예 간디' 野 후보
클르츠다로을루 1위 질주
야권 2위 후보 사퇴로 표결집
20대·쿠르드족 표심 변수
이슬람·세속주의 갈림길

'21세기 술탄'의 20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릴까. 오는 14일 대선을 앞둔 튀르키예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경제난과 지난 2월 대지진 사태에 대한 부실 대응으로 지지율이 흔들리면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권력을 잃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블룸버그·BBC 등 외신은 공통적으로 이번 대선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집권 이후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블룸버그는 "튀르키예에서 지난 한 세대 동안 가장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튀르키예의 이슬람주의 통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 등 대내외 정책 방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이후 튀르키예는 권력 균형과 반대 의견 수용 없이 권위주의에 기반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해왔다.

현재 에르도안 대통령은 6개 야당이 내세운 단일 후보이자 '튀르키예의 간디'로 불리는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지난 8일 기준 조사에 따르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지지율 50%로 에르도안 대통령(45%)을 5%포인트 앞서며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날 설상가상으로 지지율 5%대를 유지하며 야권 후보 2위 자리를 지키던 무하렘 인제 후보가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야권표가 분산되길 바라던 에르도안 대통령의 기대와는 달리 야권표가 결집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 셈이다. 14일 투표에서 과반의 득표가 나오지 않으면 28일 결선 투표에서 1, 2위 후보를 대상으로 최종 당선자가 가려진다.

에르도안 정권이 수세에 몰려 있는 가장 큰 배경으로는 살인적 물가 상승률로 대표되는 경제위기가 지적된다. 지난해 85%를 넘었던 튀르키예 인플레이션율은 이후 하락했으나 여전히 50%에 육박한다. 튀르키예 물가는 2021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중앙은행장을 교체하면서까지 금리 인상을 막는 등 비상식적 경제정책을 펼쳤다. BBC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세계 추세와 반대로 금리 인상을 거부해 리라화 가치가 폭락했다"며 "전문가들은 실제 물가 상승률이 100%가 넘는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 연초 최저임금 55% 인상에 이어 지난 9일 공공 근로자 임금 45% 인상 등 포퓰리즘 정책을 발표했다. 대선이 있는 이달엔 한 달간 가정용 가스를 무상 공급하기로 했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며 대대적 개혁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는 "나는 에르도안과 정반대다. 그가 이긴다면 튀르키예는 독재국가가 될 것"이라며 대립각을 세우면서 정권의 권위주의적 이미지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사법권 및 중앙은행의 독립성 회복, 대통령중심제에서 의회중심제로 복귀, 비정통적 경제정책 철폐 등으로 에르도안의 유산을 청산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다른 주요 관전 포인트로는 20대 젊은 층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쿠르드족 표심이 거론된다. 로이터통신은 처음 성인이 돼 투표권을 행사하는 600만여 명의 표심이 선거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 집권으로 출생 이후 한 번도 다른 지도자를 경험해보지 못한 만큼 변화에 대한 열망이 커 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튀르키예 전체 인구 8500만명 중 5분의 1을 차지하는 쿠르드족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BBC에 따르면 쿠르드족의 지지를 받는 친쿠르드 정당 인민민주당(HDP)은 이번에 공개적으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21세기 최악의 재난 중 하나로 꼽힌 올해 2월 대지진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BBC는 "5만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과 그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그렇지 않아도 위태롭던 에르도안의 지위를 더욱 약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튀르키예 건국 100주년에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 따라 정교 분리의 세속주의로 복귀하느냐, 이슬람주의 대통령의 종신 집권이냐가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승리하면 개헌안에 따라 최대 2033년까지 30년 장기 집권의 길이 열린다.

그의 재집권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친러시아 행보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 계속 견제구를 던져왔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당선되면 기약 없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도 처리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조직적 반대파 탄압 등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선거판을 만들었다"며 이번 대선 역시 공정한 선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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