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42’ 해제가 뭐길래···미 국경에 ‘비상사태’를 부르나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의 한 교회 주변에는 며칠 전부터 수천여명의 ‘야영객’들이 노숙을 하고 있다. 종이상자를 지붕 삼아 잠을 자고 낮에는 햇볕을 피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십 명에 불과했던 야영객들은 수일 만에 2000명을 훌쩍 넘어섰고, 이 도시 국경 너머에는 어림 잡아 1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 중이다. 어른들은 일자리가 있는 대도시로 향하기 위해 버스비를 구걸하고, 아이들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는다. 미국 정부의 이민자 즉시 추방 정책인 ‘타이틀 42’ 종료를 앞둔 국경지대의 풍경이다.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시행해온 ‘타이틀 42’ 행정명령이 11일(현지시간) 3년 만에 종료되면서 남부 국경지대가 몰려든 이민자들로 포화 상태로 치닫고 있다. 엘파소를 비롯해 주요 국경 도시는 일찌감치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정부는 이민자 폭증에 대비해 병력 1만5000여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이처럼 이민자가 급증한 까닭은 1차적으로 코로나19 공중보건 비상사태 종료에 따라 ‘타이틀 42’도 해제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였던 2020년 3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린 이 행정명령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이민자들에게 망명 신청을 허용하지 않고 즉시 강제 추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지난 3년간 시행되어온 엄격한 추방 정책이 종료되면서 국경을 넘으려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타이틀42 해제뿐 아니라 시대와 맞지 않는 이민법, 이민자 정책을 둘러싼 정치의 분열 등이 ‘국경 포화 상태’를 초래하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10일 보도했다.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불법적인 방식으로 건너가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가 됐다는 것이다.
NYT는 1980~1990년대 제정된 ‘구식’ 이민법이 현 상황에 맞게 재정비 되지 않은 점을 문제로 꼽았다. 법 제정 당시 경제 규모를 기반으로 한 비자 정책 등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돼 있다는 분석이다. 워싱턴에 위치한 싱크탱크인 ‘카토 인스티튜트’는 “1990년 이후 미 의회는 이민 쿼터제를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그 사이 미국 인구는 30% 증가했고, 경제 규모는 두 배가 됐다”면서 “쿼터제를 유지하려면 경제성장 규모와 인구 증가에 연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가별 차등 할당량 때문에 “멕시코와 필리핀 출신 미국 시민의 형제·자매들이 영주권을 받으려면 1세기 넘게 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카토 인스티튜트는 지적했다.
국경에 마련된 이민자 수용시설 역시 과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불법 입국하는 멕시코 남성들을 수용하도록 설계돼, 어린이 및 가족 단위 이민자들이 머물기에 적절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NYT는 “국경의 이민자 시설은 주로 당국에 체포되지 않기 위해 도주하는 이주민을 수감하기 위해 고안된 시설이지, 인도주의적 위기를 피해 국경을 넘었고 이민 당국에 자수한 수천여명의 망명 희망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민자 문제에 대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입장이 극단적으로 갈리기 때문에 이민법을 손보거나 현 상황에 대한 타협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화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불법 이민자 급증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실책으로 부각하고 있다. 공화당 일각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추진됐던 장벽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멕시코 국경 지대에 9m 높이 장벽을 설치하려 했으나 재선 실패로 공사가 중단됐다.
중남미 국가들의 불안한 정치 상황과 치안 공백, 이에 따른 극심한 빈곤도 이민 행렬 급증에 영향을 미쳤다. 본국의 상황이 워낙 절망적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미국에서 다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미국행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CNN 인터뷰에서 “전례 없는 상황”이라며 “정치적 불안과 코로나19, 기후변화에 따른 빈곤으로 이주 압력이 더욱 가중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몰려든 이민자들을 당장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민자 쉼터 등 임시수용 시설들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NYT가 입수한 미 국토안보부 자료에 따르면 약 66만명이 이달 초부터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기 위해 대기 중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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