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법·검·경 성인지 감수성···현장에서는 ‘피해자다움’ 요구 여전
“피해자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성에 대해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광주지법원은 2021년 트위터를 통해 알게된 15세 가출 청소년을 집으로 불러 수갑 등 도구를 사용해 간음한 40세 남성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가 성관계 전 “트위터에서 본 성 보조기구를 사용해보고 싶다”고 말한 점과 “SNS를 통해 다수의 남성에게 성관계를 공개 제안했다”는 것이 양형에 반영됐다. 25살 차이 나는 미성년자를 간음한 일을 두고 “한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전형적인 미성년자의제강간과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다소 가혹하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1일 서울 중구 바비엥2그랜드볼룸홀에서 ‘형사사법분야 법집행 공무원의 성인지 조사’와 ‘젠더폭력 관련 판례 분석 실태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법집행 공무원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설문조사 측정에서 일반인들에 비해 높은 평균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현장의 성폭력 범죄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는 여전히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2차 피해’ 문제가 지속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피해자지원단체들은 “아직도 피해자 중심주의 가치가 반영되고 있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피해자가 피고인과 모텔에 가는 모습이 자발적으로 보인다’거나, ‘성관계를 할 생각을 가지고 피고인의 집으로 갔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는 판결들이 다수 소개됐다.
피해자 증언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위협적·모욕적인 신문으로 2차 피해가 야기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2017년 7월 한 재판정에서 피고인의 변호사는 강간 피해자 A씨에게 “성폭행을 당할 당시에 강하게 반항 해야 했지 않냐”고 물었다. 조정민 부산지법 판사는 이날 토론에서 “불필요하게 모욕적인 반대신문은 법관이 끊어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가들은 “피해 빈도가 줄어들었을 뿐 강도에 큰 차이는 없다”고 평가했다. 전체 공무원의 성인지 감수성 평균이 올라도 개인차가 크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경찰과 검찰 관계자 중 13.5%는 성인지 감수성이 일반인 평균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수사·재판에서 2차 피해를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상별·상황별 소규모 교육 등으로 구체적인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성인지 감수성의 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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