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권의 뒤땅 담화] 안 맞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 혹시 입스?

2023. 5. 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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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이준석(35)이 대회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펑펑 울어 갤러리와 시청자들이 의아했다.

“티잉 구역에 올라서면 두려움 외엔 아무 생각 없고 공도 보이지 않아요. 딱 한 가지 느낌이 오는데 바로 ‘안 맞을 것 같다’는 거죠.”

인터뷰를 통해 그가 드라이버 입스로 6년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알려졌다. 입스(YIPS)란 스윙 전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발생하는 각종 불안 증세이다. 드라이버 티샷과 퍼트에서 많이 나온다.

가쁜 호흡에다 손에 경련이 일어나고 두려워서 클럽을 휘두르지 못하기도 한다. 골프계에선 큰 대회에 대한 중압감이나 과도한 승부욕으로 상대 선수를 심하게 의식하는 것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결정적인 실수나 누적된 작은 오류가 입스로도 연결된다. 이준석은 후원 받은 클럽을 본인에 맞게 피팅하지 않고 클럽에 적응하려다 생겼다고 직접 말했다.

“불안감이 과도한 나머지 뇌를 통해 신경체계에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이는 클럽을 움직이는 근육운동을 방해하게 됩니다.”

김기현 현정신과의원 원장의 말이다. 뇌 속의 무의식과 의식을 담당하는 편도와 해마의 균형이 깨져 편도가 과잉 활성화되고 해마가 억압되면 발생한다.

미국 메이요클리닉 연구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골퍼 중 25% 이상이 입스를 경험한다. 야구, 농구 등 구기 종목 선수나 타이피스트, 피아니스트 등 특정 근육을 반복 사용하는 직군에서도 발생한다. 골프 입스에 걸리면 한 라운드당 4.7타 이상을 잃는다는 통계도 있다.

입스에 걸리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헤드가 열리거나 닫히고, 심하면 근육 정지로 클럽을 휘두르지 못한다. 공황장애 일종으로 불면증과 대인기피증이 동반된다는 의견도 있다.

박영민 한국체대 골프지도학과 교수에 따르면 입스는 7 대 3 비율로 퍼트보다 드라이버 티샷에서 많이 나타난다. 드라이버 입스에 걸리면 어드레스 자세만 잡아도 온몸에 힘이 빠진다.

당연히 제대로 공이 날아가지 못하고 좌우로 일관성 없이 날아간다.

한때 퍼트 달인으로 꼽히던 프로골퍼 김경태도 입스로 엄청 고생했다. 어느 날 갑자기 퍼트를 하려는데 백스윙이 안 됐다. “왜 이러지” 하면서 조바심은 나는데 몸은 꼼짝달싹하지 않고 가위에 눌린 것 같았다.

“어드레스를 하고도 동작을 못하니 선수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상황을 짐작하는 것 같았죠. 당시 중계 화면에 잡히지 않아 다행이었죠.” 김경태는 심한 압박감 때문에 호흡이 빨라지며 원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동작이 이뤄져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미국 PGA 투어에서 82승을 거둔 샘 스니드(1912~2002)도 퍼트 입스로 고된 홍역을 치렀다. 그는 언젠가 5번 아이언으로 퍼트를 했다.

퍼트 입스에 따른 부담감을 덜어보려는 고육지책이었다. 매치플레이 도중 60㎝ 짧은 퍼트를 여러 번 놓치고는 퍼터만 잡으면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렸다.

결국 리듬이 무너져 의지와 상관없이 스트로크하거나 터무니없이 강하게 혹은 약하게 스트로크를 했다. 그립을 잡은 손목 경련으로 퍼터 헤드가 저절로 공에 닿아 굴러갔다.

“골프 입스를 해결할 정답은 사실 없습니다. 사람 심리가 모두 다르듯이 원인도 다양해 뾰족한 치료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박영민 교수는 프로선수들은 일단 심리적으로 입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치료가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혼자 연습장이나 넓은 페어웨이에서 시원시원하게 날려보면서 드라이버 입스에서 탈출한 사람도 있다. 승부와 관계없이 편안한 사람과 경기하면서 강도를 높여 나가기도 한다.

아예 처음부터 하나하나 기본기를 점검하거나 3~4개월 동안 클럽을 잡지 않고 몸 밸런스를 새로 세팅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과 증상에 따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우연히 원상회복하는 경우도 있다.

유명 골프 교습가 임진한은 일본 투어에서 뛸 때 드라이버 입스가 와서 고생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슬라이스가 됐건 훅이 됐건 한 가지 구질로만 쳐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절대 똑바로 치려고 하면 안 되고 슬라이스가 계속 난다면 페어웨이 왼쪽 끝을 보고 그냥 슬라이스를 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볼이 일단 죽지 않고 사니까 서서히 자신감이 붙으면서 입스가 고쳐졌다고 밝혔다.

그는 퍼트 입스에서 벗어나려면 볼이 아닌 그냥 홀만 보고 칠 것을 주문한다. 퍼트 입스에 걸린 골퍼가 볼을 보고 스트로크를 하면 임팩트 순간 갑자기 힘이 들어간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인데 이를 막으려면 볼을 보지 않고 부드럽게 스트로크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입스는 집중력 저하에서 온다는 분석도 있다. 골프에서는 집중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체력이 떨어지면 자연히 집중력도 저하된다.

프로선수들은 투어를 뛰다 체력이 떨어질 때 실수가 한두 번 나오면 자신감을 잃으면서 슬럼프가 찾아온다. 반복되면 입스로 연결된다.

“연습량이 프로선수에 미치지 못하는 아마추어는 입스가 아니라 그냥 긴장 상태에서 오는 불안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명선 한국체대 특임교수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프로선수와 일반 아마추어는 약간 다르다고 설명한다. 연습을 거의 하지 않는 아마추어 골퍼에겐 스코어 욕심이지 입스와는 무관하다는 것.

어느 날 갑자기 드라이버를 어떻게 치는지, 퍼트하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아마추어도 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다.

이에 대한 치료법으로 최경주의 유명한 명언이 있다.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아마추어들이 종종 있는데 그립과 셋업 방법만 강조하죠.”

연습량과 필드 기회가 많은 고수에게 입스가 찾아올 수도 있는데 기본기를 점검하며 잘 아는 교습가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주말 골퍼는 입스를 걱정하는 시간에 클럽을 들고 연습장을 찾는 게 나을 것 같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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