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석달만에 올 성장률 1.5%로 또 낮춰
"반도체 불황發 경기 충격
IT버블·금융위기 때와 비슷"
5월 들어서도 수출 10% 뚝
자동차만 나홀로 승승장구
반도체 수출 부진의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만에 1.8%에서 1.5%로 끌어내렸다. 당초 하반기 경기 회복의 전제였던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저조할 경우 성장률이 1%대 초반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하반기 반도체 경기 회복으로 올해 '상저하고'를 전망했지만 대대적인 감산에도 누적된 반도체 재고가 외환위기 수준을 뛰어넘으며 경기 회복 지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KDI는 11일 '상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1.5%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지난 2월 내놓은 전망치보다 0.3%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전망치인 1.6%보다 낮다.
KDI가 한층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은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과 투자 등 민간 부문 부진이 지속되면서 경기를 끌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반도체 경기가 2001년 IT 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정도로 심각하게 부진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상저하고'라고 하지만 하반기에도 경기는 안 좋을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봤을 때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낫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경기가 예상보다 부진한 시나리오에서는 성장률이 1.5%보다 낮은 1%대 초반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표를 통해 본 반도체 경기는 극도로 얼어붙은 상태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감한 탓에 쓰이지 않고 창고에 쌓인 반도체 재고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반도체 재고율은 212.4%로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을 넘어섰다. 2001년 IT 버블 붕괴 당시 232.7%(3분기 기준)보다 약간 나은 정도다. 반도체뿐 아니라 전체 제조업 업황이 모두 부진하다.
다만 KDI는 하반기에 반도체 경기가 저점을 다질 것으로 전망했다. KDI는 반도체 경기에 대해 "반도체 관련 제품의 교체 주기 등 지표들이 2·3분기에 저점을 형성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내년에도 회복세가 지지부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KDI는 반도체 경기가 하반기 바닥을 찍으면서 한국 경제도 일단은 회복기에 접어들 것으로 바라봤다. 상반기 성장률은 0.9%로 0%대에 그치겠지만, 하반기에는 이보다 두 배 이상 높은 2.1%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존 전망치보다 0.1%포인트 낮은 3.4%로 전망했다. KDI는 수입 물가 하락세 전환 등 공급자 측 물가 압력이 축소되며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서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여전히 근원물가 상승세는 높다며 당분간은 물가 안정을 위한 긴축적 거시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원유 도입 단가(두바이유 기준)는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배럴당 76달러 수준으로 예상했다. 총수출은 반도체 중심의 글로벌 수요 부진을 이유로 전년 대비 증가율을 1.8%에서 1.4%로 낮췄다. 경상수지는 수출 위축에 따라 기존 275억달러 흑자에서 164억달러 흑자로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이날 관세청에 따르면 5월 1~10일 수출액은 145억달러, 수입액은 187억달러로 집계됐다. 1년 전과 비교해 각각 10.1%, 5.7% 감소한 수치다. 이에 따른 무역적자도 42억달러에 이른다. 이달 1~10일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9.4% 줄었다. 석유제품과 정밀기기도 각각 40.1%, 10.1% 감소했다. 이와 달리 승용차 수출액은 1년 새 125.8% 급증하며 호조를 보이고 있다.
[홍혜진 기자 /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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