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S17 준비만 10년…금융당국 여전히 '오락가락'

김희정 2023. 5. 1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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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보험 회계기준 혼란에 금감원 가이드라인 제시
10년전부터 도입 준비 불구, 취지 제대로 못살려
"CSM 낮게 산출된 회사가 문제제기" 업계는 신경전

올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면서 금융당국이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새 회계제도는 원칙중심(사업비, 해지율 등을 포함한 계리적 가정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것)으로 보험사의 자율권 확보가 핵심인데, 정작 재량권 부분에서 감독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해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보험계약의 기대이익을 뜻하는 'CSM(계약서비스마진)' 산출을 두고 보험사별 큰 편차가 나타나자 일부사들이 반발했고, 주요 계리적 가정에 대해 세부기준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한 게 당국이 오락가락 행태를 보이는 내막이라고 업계는 설명한다.

/그래픽=비즈워치

11일 금융감독원은 23개 보험사 최고재무책임자(CFO)와 간담회를 열고 이달 중순 실손보험의 손해율 가정이나 무·저해지 보험의 해약률 등 주요 계리적 가정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외에 감독당국의 자의적 판단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해서는 추가로 조사해 중요도 순으로 세부기준을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존 회계제도는 수취한 보험료를 그대로 보험수익으로 인식하는 현금주의를 적용했으나 현재(IFRS17)는 보험계약으로부터 미래 현금흐름을 예측해 현재가치로 환산하게 한다. 이에 따라 CSM이 수익성 지표로 도입됐는데 보험사들이 스스로 결정한 손해율, 해약률 등 계리적 가정을 기초로 CSM을 제각각으로 산출하면서 지표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됐다.

차수환 금감원 부원장보는 "(세부 가이드라인으로) 보험사들이 주요 항목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가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회사 간 비교 가능성 및 재무제표의 신뢰성 제고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자율성'도 '관리'하겠다는 금감원 

하지만 업계 일부는 이런 금융당국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싸늘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원칙중심의 새 국제제도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데다, 지켜야 하는 회계기준을 세세하게 정해놓은 '한국식 회계정책'을 글로벌 제도에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IFRS17 제도를 주도적으로 도입한 건 금융당국이다. 10여년 전인 2013년부터 본격적인 제도 도입에 앞장섰으면서도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회계정보가 회사별로 다른 기준으로 산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과거 수차례 제기됐음에도 대비책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IFRS17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살펴본 결과 감독당국이 계리 기준을 제시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쪽에서 "소위 '까라면 까'는 '헬조선'식 회계제도로 IFRS17이 변질되고 있다"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는 소리없는 전쟁 중

업계에서는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손보업계는 CSM 산출치가 낮게 나온 일부 생보사들이 금융당국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 게 이번 가이드라인 제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실제 지난해 기준 CSM 산출결과를 보면 손보사들이 생보사들을 앞서고, 재무상황이 좋지 않았던 보험사들의 CSM이 견조하게 산출됐다.

2022년 보험사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그래픽=비즈워치

생보업계 부동의 1위사인 삼성생명(10조3744억원)의 CSM이 손보업계 5위권사인 메리츠화재(10조7294억원)보다 뒤쳐졌고, 금융당국에 의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MG손해보험의 CSM이 8354억원에 달하는 식이다. ▷관련기사 : 새 회계기준 도입하니…보험업계 '지각변동'(4월 18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손보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손보사 한 관계자는 "회계전환 정책에 따라 '자본여력'과 '미래 수익성' 중 선택해 각 회사별로 최적의 재무제표를 작성한 것"이라며 "이에 따른 계리적 가정과 예실차(예상과 실제의 차이) 등은 보험사가 책임을 지면 된다"고 했다.

다만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IFRS17은 원칙 중심으로 보험사별로 최적의 계리적 가정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으나 이러한 자율성이 적절히 관리되지 않을 경우 여러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비합리적인 계리적 가정을 정당하게 고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시장 개입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희정 (kh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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