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반도체 전쟁이 시작됐다"…신간 '칩워'

송광호 2023. 5. 1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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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DDR5 D램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일본인들은 폐허 속에서 재기를 노렸다. 모리타 아키오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전기 사업에 뛰어들어 사명을 '소니'라고 지었다. 그는 트랜지스터 등 첨단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소니를 비롯한 일본 전자 기업들은 조금씩 영역을 확대해갔다. 히타치, 후지쓰, 도시바, NEC 등은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해 메모리칩(D램) 기술 경쟁에 나섰다.

반도체 종주국 미국은 일본의 성장을 묵인했다. 워싱턴 국방 관료들은 "약한 일본보다 강한 일본이 더 낮은 리스크"라는 공식 정책을 채택했다. 그들은 일본이 기술 강국으로 커가는 걸 지지했다. 일본을 "트랜지스터 세일즈맨"으로 만드는 건 냉전 시대 미국의 핵심 전략이었다.

저자 사진 ⓒGeorge Marshall [부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달이 차면 기울듯, 미국의 패권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재앙과도 같은 베트남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10년간의 스태그플레이션, 늘어가는 무역적자 등 여러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제국은 휘청였다.

소니의 수장 모리타가 "미국은 열심히 변호사를 길러내고 있다. 일본이 더 열심히 엔지니어를 가르치는 동안"이라고 말하며 미국 동료에게 엔지니어를 키우라고 충고할 정도였다.

그러나 모든 제국이 그렇듯, 미국도 세계 경영의 노하우가 있었다. 위기의 순간 미국은 "적의 적은 친구"라는 격언을 떠올렸다. 일본의 옆에는 '숙적' 한국이 있었다. 그리고 "이병철은 무슨 일을 해도 이익을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실리콘밸리와 정책 관료는 D램 분야에서 일본 기업에 맞서는 최선책은 보다 저렴한 공급책을 찾는 일이라고 봤다. 일본의 경쟁상대를 찾아 일본의 독점을 무화시키자는 전략이었다. 노련한 경영자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정부의 전폭적 지원, 인재 등 삼박자를 갖춘 한국은 최적의 파트너였다.

비슷한 시기, 대만 정부는 중국 출신의 반도체 전문가 모리스 창(장중머우·張忠謀)을 초빙해 반도체 산업을 키워달라고 주문했다. 모리스 창은 반도체 산업을 일으킨 대표적 미국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기술회사였던 IBM 관계자들마저 모리스 창이 창안한 방법론을 연구하기 위해 텍사스에 모여들기도 했다.

모리스 창은 1970년대 중반 자신이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실행하려다 내부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파운드리' (Foundry) 사업을 펼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파운드리는 설계에 관여하지 않고, 고객이 설계해주는 대로 제조만 하는 걸 의미했다.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나누는 것, 그것은 "인쇄술 발명에 비견할 만한 사건"이었다.

모리스 창 TSMC 전 회장 [EPA=연합뉴스]

미국 플레처스쿨에서 국제사를 가르치고 있는 크리스 밀러가 쓴 '칩워'(Chip War)는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반도체를 둘러싼 관련 국가들의 쟁투를 그린 논픽션이다. 군웅할거의 시대처럼 탁월한 인물들이 등장해 업계를 장악했다가 스러지고 다시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는 이야기가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연이어 이어진다.

책은 인물 중심으로 반도체의 역사를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미중 간의 대결로 나아간다. 다만,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간의 패권 경쟁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섣불리 예측하진 않는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 속에 중국이 위기에 내몰린 건 사실이지만, 승부의 추가 미국으로 급격히 쏠렸다고도 보지 않는다.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양국의 전투를 관망하고 있다. 로버트 해니건 전 영국 정부통신본부(GCHQ) 국장은 "서구가 중국의 기술 발전을 억누를 수 있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대신에, 우리는 중국이 미래에 세계의 기술 강국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 위험을 지금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서유럽국가 대부분이 해니건 국장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가운데 구글·애플 등 빅테크 기업은 엄청난 돈을 들여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고 있고, 중국기업 화웨이, 알리바바 등도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독주체제를 구축한 TSMC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상태다. 국가는 국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전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치열한 경쟁에서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가 2022년 선정한 올해의 책.

부키. 노정태 옮김. 656쪽.

책 표지 이미지 [부키 지음.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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