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대반격, 바흐무트서 러 최정예부대 궤멸시켰다
우크라이나군이 ‘바흐무트 대첩(大捷·크게 이김)’으로 러시아 대반격의 서막을 장식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바흐무트는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대 격전지다.
우크라이나 육군 3강습여단은 10일(현지 시각) “바흐무트에서 러시아 72자동소총여단을 퇴각시켰다”고 발표했다. 72자동소총여단은 러시아 최정예 부대 가운데 하나다. 우크라이나 민병대 ‘아조우 연대’ 지도자 안드리 빌레츠키는 동영상 메시지에서 “러시아 2개 중대 병력을 궤멸시키고, 7.8㎢의 영토를 수복했다”고 밝혔다. 7.8㎢는 여의도 면적 2.7배쯤 된다.
우크라이나가 승전고를 울린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5월 9일)을 맞아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라고 규정하는 등 승전 의지를 다진 직후였다. 우크라이나군은 적진 공습에서 적군 도주로 이어지는 압승 장면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공개해 기선 제압에도 나섰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구 소련제 탱크인 T-64와 미국제 장갑차 M-113을 앞세워 러시아 진지로 진격했다. 대반격의 시작이었다. 우크라이나산 대전차 미사일인 ‘스투그나 P’도 대반격에 가세했다.
와그너그룹의 수장이자 푸틴의 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러시아 72자동소총여단이 퇴각하면서 와그너그룹 용병 500명이 사망했다”며 우크라이나군의 공세에 밀려 달아난 러시아 정규군을 비난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러시아 정규군 피해를 합치면 사망자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포스트는 “최근 몇 달간 러시아군이 겪은 최악의 패배”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바흐무트 공격 장면을 담은 동영상과 우크라이나 공세에 밀려 러시군이 달아나는 장면을 담은 사진도 공개했다. 전과(戰果)가 과장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푸틴 정권과 러시아 정규군, 와그너그룹 용병의 사기를 꺾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군의 바흐무트 대첩은 러시아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바흐무트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바흐무트는 동부 도네츠크주의 도시로 최근 9달간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용병대가 공방전을 벌여왔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전쟁의 승기를 잡기 위해 러시아가 대부분 장악한 바흐무트를 사수해야 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바흐무트가 도네츠크·루한스크 등 동부 돈바스 점령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거점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군의 바흐무트의 탈환이 뼈아픈 대목이다.
와그너그룹 용병대와의 전투로 우크라이나군 피해가 잇따르자 서방 등에서 철수 권고가 잇따랐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사수 의지를 밝혀왔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인근을 싸움터 삼아 대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기습적으로 바흐무트를 전장으로 택하며, 러시아의 허를 찔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이 이번 승리로 탈환한 지역이 일부에 불과한 만큼, 우크라이나군의 바흐무트 승리가 전쟁의 판도를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르히 체레바티 러시아 동부군 대변인은 “아직 러시아 여단 전체 병력이 파괴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번 패배를 계기로 푸틴 정권과 와그너 그룹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전승기념일에 공개한 동영상에서 “한 행복한 할아버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확신했다. 이 할아버지가 완전히 얼간이라는 게 드러난다면···”이라고 했다.
프리고진은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주요 외신들은 프리고진이 푸틴을 할아버지로 에둘러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프리고진은 최근 탄약 공급 부족 등의 문제로 수차례 러시아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해왔다.
한편, 바흐무트 인근 전장을 현장 취재하던 아르만 솔딘 프랑스 AFP통신 기자가 9일 로켓포 공격으로 숨졌다. 이로써 이번 전쟁으로 취재 중 숨진 기자는 모두 15명으로 늘어났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