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강간 소송 패소는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의 승리"

이유진 2023. 5. 1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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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된 성폭력 의혹만 수십 개, 공식 석상에서 서슴없이 여성혐오 발언을 하고도 제지당한 적이 없다.

막강한 권력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패소는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의 승리'라고 영국 가디언이 10일(현지시간) 평가했다.

E. 진 캐럴(79)은 1996년 뉴욕 맨해튼 백화점 탈의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강간을 당했다며 민사소송을 냈다.

9일 뉴욕 남부연방지법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500만 달러(약 66억 원)의 피해 보상과 징벌적 배상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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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단, 27년 전 트럼프의 성추행 '인정'
가디언 "'권력형 성범죄'의 정점에 첫 균열"
지난달 27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의 선거유세 현장에서 "우리는 가망 없는 인간이 이끄는 나라에 살고 있지만 2024년에는 승리할 것"이라며 연설하고 있다. 맨체스터=AP 뉴시스

제기된 성폭력 의혹만 수십 개, 공식 석상에서 서슴없이 여성혐오 발언을 하고도 제지당한 적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이야기다. 그런 그에게 처음으로 ‘노(NO)’ 사인이 떨어졌다. 27년 전 그에게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낸 민사소송에서 "강간은 입증이 어렵지만 성추행은 있었다"는 평결이 나온 것.

막강한 권력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패소는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의 승리’라고 영국 가디언이 10일(현지시간) 평가했다.


'권력형 성범죄의 정점' 트럼프의 패소, 그 의미는

E. 진 캐럴(79)은 1996년 뉴욕 맨해튼 백화점 탈의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강간을 당했다며 민사소송을 냈다. 9일 뉴욕 남부연방지법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500만 달러(약 66억 원)의 피해 보상과 징벌적 배상을 명령했다. 그의 성폭력 혐의가 법원에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가디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권력형 성범죄의 정점에 있던 남성’이라 평가했다. 그는 최소 26건의 성폭력 혐의를 받았고 “외모와 체력이 모두 없다”(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몸매가 좋다. 내 딸이 아니었다면 데이트했을 것”(이방카 트럼프)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여성혐오 발언을 일삼았다. “트럼프가 현직 대통령일 때 백악관 여성 직원을 성추행하거나 외모를 지적했다”는 트럼프 행정부 당시 백악관 전략소통국장의 폭로도 나왔다.

이번 평결은 권력자에게 성폭력를 당한 피해자들의 ‘무력감’을 덜어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등권 변호사인 글로리아 알레드는 “부자나 유명인에게 당한 성적 피해를 소송으로 맞받아쳐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처음으로 무너진 트럼프의 '여성혐오' 브랜딩

지난 8일 진행된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에서 27년 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대한 재판 중 원고인 E. 진 캐럴(오른쪽)이 트럼프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의 최후변론을 듣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삽화.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쉽게 얻어낸 성과는 아니다. 캐럴은 피해 사실을 최초로 폭로한 2019년부터 지독한 2차 가해에 시달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 여자는 내 타입이 아닌데 어떻게 강간하느냐”고 주장했고 지지자들은 ‘못생기고 늙은 여자’라고 비하했다.

트럼프 변호인은 법정에서 캐럴에게 “성폭력을 당할 당시 왜 비명을 지르지 않았냐”고 반복적으로 물었다. 캐럴이 “공황 상태라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고 답했지만 변호인은 “거짓말로 ‘진짜 강간 고발’을 위축시키며 이익을 얻으려 한다”고 폄하했다.

가디언은 이번 재판을 두고 “성차별주의와 피해자 비난으로 가득 찬 여성 혐오의 마스터 클래스”라고 평가했다. 평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 혐오 브랜드’에 상처를 남겼다.

캐럴은 승소 직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세계는 진실을 알았다. 이 승리는 자신조차 믿지 못해 고통을 겪은 모든 여성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발언이었다.

27년 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패션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이 9일 재판에서 승소한 뒤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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