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집단적 동의 남용하면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도 유효”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받지 않은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앞서 대법원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면서 동의를 받지 않은 경우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의 효력을 인정하는 판례를 다수 내놨는데, 기존 판례를 45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현대자동차 간부사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다고 밝혔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대법관 13명 중 7명)은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노동자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이는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무효”라며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이 동의권을 남용하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해당 취업규칙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집단권 동의 남용’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집단권 동의 남용이란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되고 △사용자가 노동자의 동의를 구하고자 진지하게 설득·노력했지만 △노동자 쪽이 합리적 이유 없이 취업규칙 변경에 반대한 경우에 해당한다. 노동자 쪽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동의가 없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도 유효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다수의견은 “집단적 동의권 남용 여부는 엄격히 판단해야 하고,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전체 직원에 적용되던 취업규칙이 있었으나, 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2004년 7월부터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에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별도로 제정·시행했다. 이 간부사원 취업규칙에는 기존 취업규칙과 달리 월차 휴가제도를 폐지하고 연차휴가 일수에 상한을 규정하는 등 연월차 휴가를 불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간부사원 89%의 동의를 받고 취업규칙을 변경했지만, 과반수 노동조합인 현대차 노조의 동의는 받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 16명은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으로 무효라고 주장하며 취업규칙으로 받지 못한 연월차휴가수당을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원고 패소로, 2심은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2심은 해당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 동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통념상 합리성 기준에도 맞지 않아 무효라고 봤다. 대법원은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받지 않은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은 원칙적으로 금지한다고 판단하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기준이 아니라 새 기준인 ‘집단적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보라는 취지다.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은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하는 경우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때 근로자는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를 뜻한다. 하지만 1978년부터 대법원 판례는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더라도 해당 취업규칙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유효하다는 입장이어서, 판례가 강행규정 법률과 충돌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다만 사회통념상 합리성 기준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됐고 2015년 대법원 판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기준을 제한적으로 해석·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다수의견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대한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권은 헌법과 근로기준법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을 실현하는 중요한 절차적 권리”라며 “변경되는 취업규칙 내용의 타당성이나 합리성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확정적이지 않아 이로 인해 법적 분쟁이 계속돼 법정 불안정성이 크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다만 대법관 6명이 기존 판례가 유지돼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내며 팽팽히 맞섰다. 별개의견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기간 그 타당성을 인정했고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하다”며 “이 사건의 취업규칙 변경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분명하게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기존 판례 이후 생겨난 근로기준법 명문 규정이 오히려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 등의 판례를 수용해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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