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취급에 월세도 못내는데 정당 가입하라고?” 한숨 쉬는 공인중개사 [부동산360]
월 최소 1000원 이상 납부 권리·책임당원 가입 권유
법정단체화 목적…총선용 표심 이용 정치권 압박 수단
[헤럴드경제=신혜원 기자] 약 11만 회원이 소속된 한국공인중개사협회(한공협)가 ‘법정단체 승격’이라는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협회 차원에서 소속된 공인중개사들을 대상으로 ‘1인 1정당 가입’ 캠페인을 벌이는가하면 이종혁 협회장은 ‘1인 1정당 가입이 업권 수호 첫걸음’이라며 중개사들의 권리·책임당원 가입을 권유하는 홍보 영상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한공협의 정치 세력화 움직임에 일선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서는 당장 거래절벽에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와중에 거대 담론에 협회가 올인하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부동산 경기 침체, 잇따르는 전세사기로 인한 중개사 이미지 악화 등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 매월 당비를 납부해야하는 정당 가입까지 요구받는 게 합리적이냐는 지적이다.
1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한공협은 최근 1인 1정당 가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지지성향에 관계없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등에 최소 월 1000원 이상의 당비를 납부하는 권리·책임당원으로 가입하자는 주장이다. 공인중개사를 위한 입법을 요구하고 법정단체 승격을 조속히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한공협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정부와 국회에 협회가 공인중개사 지도·관리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법정단체 승격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한공협을 법정단체로 만들어 지도·감독 및 단속권을 부여하고, 공인중개사가 개설등록을 할 경우 협회에 의무 가입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특정 이익단체를 법정단체로 만들면 독점화돼 공정경제 기반이 훼손되고 중개서비스가 후퇴할 수 있다는 프롭테크 업계의 이견도 커 계류 중인 상황이다.
협회의 이같은 움직임은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인 만큼 ‘표심’을 이용해 정치권의 공인중개사법 입법을 압박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한공협이 캠페인 참여 방법에 ‘당원 가입시 반드시 권리·책임 당원(월 당비 최소 1000원 이상 자동납부)으로 가입하고 추천인에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로 기재해야 된다’고 설명한 것도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뿐만 아니라 협회장까지 나서서 정당 가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양상이다. 이종혁 협회장은 약 한 달 전 한공협이 운영하는 중개매물 플랫폼 ‘한방’ 공식 유튜부 채널에 회원들의 정당 가입을 당부하는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에서 이 협회장은 “(중개사들의) 직업적 이익을 위해 정당행위,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대한간호협회도, 대한한의사협회도 1인 1정당 가입하기 캠페인을 펼쳤는데 전국 11만3000명 회원이 있는 한공협도 1인 1정당 가입하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며 “우리의 직업적 안정성을 위해,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를 막아내고 국민의 재산권을 지켜내기 위해 법정단체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된다”고 말했다.
한공협은 1인 1정당 가입 캠페인에 대해 의무가 아닌 권유 차원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공협 관계자는 “강제성을 띄면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권유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정당 가입시 추천인에 한공협을 기재하도록 한 부분에 대해선 “그냥 정당 가입을 하면 직업이 공인중개사인지 일반인인지 알 수 없다고 하더라”라며 “공인중개사들이 가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의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관심 없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협회 소속 개포동 공인중개업소 대표 A씨는 “가입 권유 문자도 오고 하던데 크게 관심이 없다”며 “현장 업무로 바빠 신경 쓸 틈도 없다”고 했다. 또다른 협회 소속 중개업소 관계자 B씨도 “전세사기 이슈들로 정신없는데 굳이 그런 캠페인에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같은 협회의 정치 세력화에 대해 “그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정치권이 그런 이익단체에 표를 구걸하고 그러한 세력에 휘둘리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단체와 정치의 연결을 끊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정치권이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표와 세력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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