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완전정복] 대형 화랑, 블루칩 작가 영입전쟁 … 프리미어리그 못지않네
하락장에 낙폭 적은 작품 선호에
글래드스톤, 데이비드 살레 영입
데이비드즈위너, 리히터와 전속
가고시안, 흑인·여성작가 싹쓸이
페이스, 유영국과 전속계약 체결
◆ 미술시장 완전정복 ◆
불황이 다시 찾아오면서 세계적인 메가 화랑들이 분주해졌습니다. 최근 미술 시장에서는 '블루칩' 작가의 이적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옵니다.
4월 말, 뉴욕에서 활동하는 화가 데이비드 살레는 뉴욕, 브뤼셀, 서울 등에 갤러리를 운영하는 글래드스톤에 합류했습니다. 글래드스톤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리만 머핀은 아시아, 타데우스 로팍은 유럽 시장을 책임집니다. 스타 작가가 이처럼 여러 화랑에 소속되는 건 흔한 일입니다.
지난 10년간 7번의 개인전을 연 저명한 화랑 스카슈테트(Skarstedt)에서 블루칩 작가를 낚아챈 바버라 글래드스톤은 "살레는 그의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1979년 갤러리를 연 직후에 산 중요한 그림 중 하나도 살레의 작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살레도 "바버라와 나는 수십 년 동안 친구였으며 존경하는 많은 예술가와 함께하게 돼 기쁘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글래드스톤은 이로써 조안 조나스, 알렉스 카츠, 왕게치 무투 등에 이어 또 하나의 대형 작가를 보유하게 된 셈입니다. 3월에는 로버트 라우셴버그도 페이스갤러리에서 이적시킨 바 있습니다. 2008년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마지막 개인전을 개최했던 페이스는 라이벌에게 미국 대표 작가의 유산을 넘겨준 셈입니다.
작년 이후 작가들의 이적 행렬은 마치 프리미어리그 같은 스포츠 시장을 방불케 합니다. 페이스는 작년에만 6명을, 가고시안은 9명, 하우저앤워스는 5명, 데이비드즈위너는 3명의 영입을 발표했습니다.
미술계를 가장 놀라게 한 소식은 작년 12월 '현대미술의 제왕'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37년의 인연을 뒤로하고 마리안 굿맨을 떠나 세계 '빅4'로 꼽히는 데이비드즈위너로 옮긴 겁니다. 리히터는 "부친인 루돌프 즈위너와 1960년대부터 친구였다. 세대를 뛰어넘어 교류하게 된 것이 기쁘다"고 밝혔습니다.
2017년 공식적으로 은퇴한 91세의 거장은 이적 직후 뉴욕지점에서 개인전으로 데뷔했고, 베를린 신미술관에서 4월 성대한 개인전을 개막했습니다. 이적 효과가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을지도 컬렉터들의 관심을 끕니다. 리히터에 이어 곧바로 미국을 대표하는 행동주의 사진작가 낸 골딘도 마리안 굿맨에서 가고시안에 이적하며 충격을 줬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점을 운영하는 가고시안은 팬데믹 기간에만 스탠리 휘트니, 릭 로, 디아나 로슨, 자데 파도주티미와 같은 여성과 흑인 예술가를 싹쓸이하다시피 계약을 이어갔습니다. 이 먹성 좋은 화랑은 거장만을 쓸어담지 않고 차세대 작가인 '레드칩'까지도 입도선매하는 중입니다.
한국 작가의 영입도 늘고 있습니다. 3월 아트바젤 홍콩을 앞두고 페이스는 작고한 '추상화의 거장' 유영국을 전속으로 영입했습니다. 페로탕이 이배와 심문섭을, 페이스가 이우환과 이건용을, 리만 머핀이 이불과 서도호를 대표하며 한국 작가의 저변은 해외로 부지런히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유영국이 10억원을 돌파하며 시장을 놀라게 한 것처럼 가치 상승을 위해서 해외 화랑과의 전속계약은 긍정적인 일입니다.
최근에는 경매가 300억원을 돌파한 '화가들의 화가' 피터 도이그가 전속 화랑 마이클 베르너와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독립적으로 런던 코톨드 갤러리 개인전을 열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FA 시장 대어를 누가 영입할지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불황에 작가 쟁탈전이 치열해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하락장에서 블루칩 작가의 가격 방어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반면 레드칩은 하락기에 낙폭이 크고 거래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파가 걷히면 살아남은 작가와 화랑들은 더욱 강해져서 돌아오곤 합니다.
경제학자 클레어 매캔드루는 메가 화랑들의 쟁탈전이 재정적 위험에 대한 대비라고 분석합니다. "최고가 작가에 대한 의존도가 낮을 때 위험이 줄어든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화랑들이 깨닫는 중"이라는 설명입니다. 경제학의 법칙은 미술 시장에도 생생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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