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동원 피해자 양영수 할머니 대구서 별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인 양영수 할머니가 11일 일본의 사죄를 듣지 못한 채 노환으로 별세했다.
11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최근까지 대구에서 거주하던 양 할머니는 1944년 광주 대성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두 달 만에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됐다.
양 할머니는 "내가 일본에 조금이라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버지를 덜 괴롭힐 것이고, 돈을 벌면 집안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광주)=서인주 기자] 일제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인 양영수 할머니가 11일 일본의 사죄를 듣지 못한 채 노환으로 별세했다.
11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최근까지 대구에서 거주하던 양 할머니는 1944년 광주 대성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두 달 만에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됐다.
양 할머니의 생전 진술에 따르면 그는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공짜로 할 수 있다'는 일본인 교사의 권유를 받고 일본행을 택했다.
아버지는 늘 일본 경찰에 쫓겨 다녔고, 하나밖에 없는 오빠는 징용으로 끌려간 상황이었다.
양 할머니는 "내가 일본에 조금이라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버지를 덜 괴롭힐 것이고, 돈을 벌면 집안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감옥살이와 다름없었다고 했다.
해방되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위안부'로 오인하던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일본에 다녀왔다는 얘기는 전혀 꺼내지 못했다.
양 할머니는 2014년 2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 원고로 참여했다.
1·2심 재판부는 양 할머니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했지만, 2018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대법원에 상고심이 계류 중이다. 슬하에 딸 1명이 있으며 빈소는 대구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3일, 장지는 대구 명복공원이다.
sij@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수 한혜진 "남편 저녁밥 같이 먹고 다음날 떠나…매일 울며 지내"
- 출산 앞둔 안영미 ‘라스’ 하차 “순산하고 가슴춤으로 돌아오겠다”
- 신정환 “도박하기 전인 16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 기침해 병원 갔더니…기생충 사체 수백마리 ‘경악’
- 오재원 "코리안특급 너무 싫어한다"…박찬호 공개 저격, 왜?
- ‘마약 혐의’ 유아인, 2차 출석 연기… 취재진 보고 도로 귀가
- 부부싸움 잘했네?…남편과 다투고 홧김에 산 복권 1·2등 ‘잭팟’
- 가수 정동원, 사고 후 오토바이 바로 팔았다
- 김우빈 “비인두암 투병,두려웠다…요즘은 순간순간 즐기려 노력”
- 14살 소녀가 야간 도축장 청소?…美전역 충격 몰아넣은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