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제사주재자, 남녀 불문 직계비속 중 연장자 우선”

2023. 5. 1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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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합, 기존 ‘아들 우선’ 판례 변경
“남성상속인 우선, 헌법정신 반한다”
“협의없으면 연령 객관적 기준 삼을 수 있어”
기존 판례 법리 따른 원심 깨고 파기 환송
별개의견 4명도 판례 변경에는 동의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제사주재자와 관련해 별도 협의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를 불문하고 연장자를 우선으로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장남 또는 장손자가 우선한다는 기존 판례가 변경됐다.

제사주재자는 제사 관련 재산의 소유권을 갖는데, 민법은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숨진 A씨의 배우자, 큰딸, 둘째딸이 B씨 및 A씨 유해가 봉안된 추모공원을 상대로 낸 유해 인도 소송 상고심에서 11일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원고인 배우자와 1993년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이후 혼인관계가 있던 상태에서 B씨와 사이에 아들 C씨를 낳았다. A씨 큰딸이 C씨보다 먼저 태어났다.

2017년 A씨가 사망하자 B씨는 A씨 유체를 화장한 후 유해를 경기도의 한 추모공원 납골당에 봉안했다. 그러자 원고들은 B씨와 추모공원을 상대로 같은 해 유해 인도 소송을 냈다.

대법 “남성 상속인 우선, 헌법정신에 반해…연령이 객관적 기준 될 수 있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기존 전원합의체 판결을 변경했다. 전원합의체에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고 김명수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이 심리 및 선고에 참여하는데 13인 중 9인이 다수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제사주재자 결정 방법에 관한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조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워 유지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공동상속인들 사이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협의가 없을 때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개인의 존엄과 양성 평등에 기초한 혼인 및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현대사회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 가계 계승의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하고 망인에 대한 경애와 추모의 의미가 중요해지고 있어 남성 상속인이 여성 상속인에 비해 제사주재자로 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감안할 때 최근친인 직계비속이 여러 명일 경우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연령이 최소한의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재판부는 “같은 지위와 조건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장자를 우선하는 것이 전통 미풍양속에 부합하고 실제 장례나 제사에서도 직계비속 중 연장자가 상주나 제사주재자를 맡는 것이 우리 문화의 사회 일반 인식에 합치한다”고 밝혔다. 또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등 법질서 곳곳에 반영돼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이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본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와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사주재자 결정 방법에 관한 새 법리는 법적 안정성과 당사자 신뢰 보호를 위해 이 판결 선고 이후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뤄지는 경우에만 적용된다”며 “새 법리 선언은 이 사건 재판규범으로 삼기 위한 것이므로 이 사건에는 새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별개의견 4명도 기존 전합 변경은 찬성…“법원이 개별적 판단해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앞 로비 [대법원 제공]

재판부는 이러한 판단에 따라 이 사건의 경우 “A씨의 직계비속 중 남녀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를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되 다만 그 사람이 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사유가 있는지를 심리해 누가 제사주재자인지를 판단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C씨가 제사주재자로서 망인의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봐 자녀들 중 연장자인 장녀를 비롯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1심을 유지했다”며 “법리를 오해하고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별개의견을 낸 4명도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을 변경하는 것에는 찬성했다. 다만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법원이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하급심은 기존 전원합의체 논리에 따라 판결하면서 1·2심 모두 원고 패소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C씨가 제사주재자로서 A씨에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B씨는 C씨의 법정대리인(친권자인 어머니)로서 그 유해를 점유·관리하고 있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2심은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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