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정권 1년, 옛 소련 검찰의 그림자 [아침햇발]
[아침햇발]
박용현 I 논설위원
옛 소련의 검찰은 특이했다.
일차적 임무는 각급 행정기관이 행하는 조처의 적법성을 감시·감독하는 것이었다. 검찰의 임무를 규정한 법에 수사지휘나 기소 역할은 오히려 후순위로 언급됐다. 이들의 감시·감독 대상에는 정부 부처를 포함해 거의 모든 기관이 망라됐다. 검찰은 필요하면 이들 기관을 방문해 어떤 자료든 요구하고 살펴보고 대면조사도 할 권한을 가졌다. 불법이라고 판단하면 시정명령을 하고 수사도 했다.
사법 영역에서도 검찰의 힘은 막강했다. 수사를 지휘하는 것은 물론 모든 법 집행 기관의 활동을 총괄 조정했다. 구속과 압수수색, 감청 등에 대한 결정권도 행사했다. 판사의 행위를 감시하는 등 재판 과정과 결과에 대한 적법성 검토 권한까지 가졌다. 검사는 법정에서 판사나 변호인보다 우월한 지위를 점했다.
이렇게 검찰은 매우 특수한 위상과 정치적 영향력을 누렸다. 검사는 정치적 엘리트로서 공산당 조직의 일원이었지만 법관들은 그렇지 않았다. 검찰은 위계구조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었다. 옛 소련은 이러한 검찰을 통치 수단으로 삼아 행정부와 사법부 전체를 통제 아래 두는 일원적 체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검찰을 ‘프로쿠라투라’(Prokuratura)라고 불렀다. 프로쿠라투라 시스템은 옛 소련의 위성국가인 동유럽에도 이식됐고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도 잔재가 남아 있었다. 이들 국가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때 이 기형적 검찰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유럽연합 자문기구인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베니스위원회)는 여러차례 의견서와 보고서를 내 문제를 지적했다.
베니스위원회는 정부 기관에 대한 감시·감독 권한과 관련해 “프로쿠라투라는 조직이 너무 거대하고 막강한 권한을 지녔으나 투명하지 않은 기관”이라며 “이런 기관이 최고 권력자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 및 법의 지배와 양립 불가능하다는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권한과 책무는 범죄의 기소와 형사법 체제를 통한 공익의 옹호에 한정돼야 한다는 원칙을 상기시키고 “프로쿠라투라의 감독 기능은 행정법원, 헌법재판소, 여타의 독립적 감독기구 등으로 분산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사법 영역에서 과도한 검찰권에 대해 “일부 국가들에 이런 체제의 영향이 남아 있다”며 “검찰이 책임지지 않는 제4부가 될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압수수색, 구속 등의 절차는 절대적으로 법원의 통제 아래 둬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검찰 편향’으로 인해 영장이 사실상 자동발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인권에 대한 위험이자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위험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독립성을 적극 옹호하는 베니스위원회이지만 프로쿠라투라 식의 무소불위 검찰은 철저한 비판 대상이었다.
그동안 검찰개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우리가 긍정적으로 참고할 만한 외국의 사례가 많이 언급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1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오히려 최악의 사례를 검토하는 게 현실적으로 더 시사점이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현 정부 1년을 평가하는 여러 토론회에서 한결같이 지적된 게 검찰 출신 특정 집단의 정부 장악이다. 대통령실은 물론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국가보훈처 등 국정 전반의 요직을 이들이 잠식해가고 있다. 인사 라인도 마찬가지다. “범정부 기관에 ‘검찰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확산”됐고 “사법과 법조에 대한 검찰의 영향력은 최대화”됐으며(유승익 한동대 연구교수, 참여연대 토론회) “다른 권력기관들은 검찰공화국의 조력자로 전락하였다. 경찰은 무력화되었고, 국정원은 과거로 회귀하였으며, 감사원은 정적 제거의 선봉을 자처하고, 법원은 방관자 또는 소극적 견제에 그쳤다”(이창민 변호사, 민변 토론회). 검찰 출신 특정 집단이 국정 전면에 나서 일원적 통치 체계를 형성하고 검찰 조직은 이들과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의 의혹에는 눈감은 채 정치적 반대자를 겨냥한 수사에 노골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검찰의 질주를 사법부가 통제할 수 있느냐, 견제할 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갈수록 물음표가 커진다. 프로쿠라투라의 그림자가 스친다.
윤 대통령은 미국 하버드대 연설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은 독재와 전체주의”라고 했다. 프로쿠라투라는 그 독재와 전체주의가 사랑한 검찰상이다. 우리가 조금도 다가가서는 안 될 위험한 유산이다.
pia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코로나 긴 터널, 드디어 끝났다…3년4개월 만에 ‘풍토병’ 선언
- 송파 1인가구 60대 숨진 채 발견…공과금 체납에도 ‘위기 사각’
- 단톡방 나갔다가 들켰어…‘조용히 나가기’ 따라해봐요
- 다음주 장미 더 피겠네~ 주말 비온 뒤 30도 초여름 날씨
- 김남국, 위믹스 코인 보유 직전에 ‘호재성’ 법안 발의
- 장녀도 제사 주재할 수 있다…대법 “장남 우선은 성차별”
- “러시아 군, 전우 500명 주검 두고 도망”…우크라 “사실이다”
- [사설] ‘이태원 참사’ 서울청장 기소 제동 건 대검찰청, 뭘 원하나
- 한동훈, 또 발끈…참여연대에 “주전 선수로 뛰다 심판인 척”
- 안전모 쓴 25살, 기계에 머리 눌려 사망…중대재해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