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근로자 동의없는 취업규칙 변경 인정 안돼” 판례 변경
노조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한 경우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노조 동의가 없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효력을 인정해 온 기존 판례를 폐기한 것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현대차 간부사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이들에게 패소 판결한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차는 2004년 주5일제를 도입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되자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에게만 적용되는 간부사업 취업규칙을 별도로 만들었다. 종전 취업규칙과는 달리 월 개근자에게 1일씩 주던 월차휴가를 없애고 연차휴가에 25일의 상한을 신설하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과장급 이상 일부 간부사원들이 2004년부터 지급받지 못한 연월차수당을 부당이득으로 내놓으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패소판결을 했다. 종전 취업규칙에 따른 미지급 월차수당을 직접 회사를 상대로 청구할 수 있으므로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자 간부들은 2심에서 미지급 연월차수당을 직접 달라는 소송을 냈고 2심은 일부 승소판결을 했다.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데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도 받지 않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근로기준법 94조는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근로자 동의를 받도록 돼 있다. 대법원은 기존에 판례를 통해 취업규칙 변경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동의 없이도 유효하다고 해석해 왔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번에 그와 같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기준으로 근로자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인정해 온 기존 법리를 유지할 것인지를 전원합의체 주제로 삼았다.
전원합의체 13명 중 7명은 종전 판례를 변경하는 파기환송 의견을 냈다. 이들은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회통념상 합리성’만으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근로자의 동의권은 헌법 32조 2항(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에 근거한 중요한 절차적 권리여서 내용의 타당성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조재연, 안철상, 이동원, 노태악, 천대엽, 오석준 대법관 6명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대법원이 오랫동안 그 타당성을 인정한 것으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번 판결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가 폐기되면서 기업의 인사·노무관리 부담이 한층 가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형로펌의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94조에 형사처벌 규정도 있어서 CEO들의 노무관리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에선 이번 사건이 현대차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대차는 취업규칙을 변경하며 전체 간부사원 6683명 중 5958명(89%)으로부터 약식 동의를 받았고 따로 노조 동의를 받지 않았다.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이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은 인력 구조의 특성상 벌어진 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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