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대 과장, 차장들 왜 회사에서 쫓겨날 위험에 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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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를 인수하자마자 곧바로 감원의 칼날을 들이댔다. 한때 7500명에 달했던 트위터 정규직이 1300명까지 줄었다. 타깃은 주로 말단 직원과 고위직 사이에 낀 중간관리자들이었다. 머스크는 “코딩하는 직원 한 사람을 관리하는 사람이 10명이나 되는 게 트위터의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실무를 맡은 부하 직원을 관리하는 중간 직급이 지나치게 많다는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직장 내 중간관리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조직의 허리에 해당한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대체로 직장 생활을 7~8년 정도 한 과장급에서 15~16년 차 안팎의 차장급 사이가 해당된다. 미국의 경우에도 국내 기업의 대리·과장급인 어소시에이트(associate)에서 차장급과 엇비슷한 시니어(senior) 또는 어시스턴트 매니저(assistant manager) 사이가 중간관리자로 분류된다.
중간관리자는 업무가 능숙해질 만큼 경험을 쌓았고, 연봉도 부장급 이상보다는 낮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이들을 상대로 감원의 피바람이 불고, 국내에서도 비슷한 연령대의 직장인들이 희망퇴직을 신청하라는 압력을 받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왜 한창 일할 나이의 직장인들이 퇴출 위기에 몰리고 있을까.
30대에게도 다가오는 해고 칼날
미국의 소프트웨어 업체 세일즈포스는 올해 초 전체 직원의 10%에 해당하는 7000여 명을 내보내겠다고 밝혔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가고 경기 침체가 다가올 수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는데, 주된 대상이 중간관리자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구글도 비슷한 상황이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지난 1월 전체 직원의 6%인 1만2000명을 해고했는데, 피오나 시코니 구글 최고 인사책임자는 “구글에는 3만명의 관리자가 있다”며 중간관리자 위주로 감원을 진행했다고 시사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노동 관련 법규에 따라 정규직을 사측 마음대로 잘라낼 수 없다. 대신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의 형식을 빌려 구조조정을 한다. 예전에는 부장급 이상 고참 관리자들이 위험했지만, 근래에는 과장·차장급 중간관리자도 나가라는 압력을 받는다. 엔터테인먼트 업종의 대기업 A사는 실적 부진을 이유로 올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A사에 정통한 재계 인사는 “전체 해고자 가운데 어림잡아도 60% 정도는 과장·차장급이었다”며 “30대 초반에 불과하지만 퇴사 압력이 가해진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국내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희망퇴직의 주된 대상은 지점장급 이상 간부였지만, 이제는 부지점장급 이하로 대상이 넓어지는 추세다. 신한은행은 올해부터 부지점장 이하 직원도 만 44세가 넘으면 희망퇴직이 가능하게 했다. 우리은행은 만 43세, 농협은행은 만 40세까지도 희망퇴직을 받았다.
쓸데없는 참견만 하는 존재?
중간관리자가 해고의 타깃이 된 이유는 지난해 금리 인상 이후 경기가 얼어붙고 기업의 실적이 나빠진 이후 경영진이 ‘중간 직급의 직원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메타 등 빅테크 기업은 팬데믹 동안 이용자가 급증하다 보니 채용을 대거 늘렸다. 이 과정에서 중간관리자에게 더 많은 역할을 줬고, 승진도 빨라져 비교적 젊은 중간관리자가 대폭 늘었다. 그러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 되자 두툼한 중간층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직 다이어트’를 꾀하게 됐다는 해설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빅테크 기업들이 수년간의 과열 채용 이후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간관리자를 (해고의) 명확한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의 경우 지난 2019년 9월부터 3년 동안 직원 규모가 94% 증가했다. 그러다 작년 11월 전체 직원의 13%에 해당하는 1만1000명을 내보냈고, 올해 들어서도 추가 감원에 나섰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관리자가 관리자를 관리하는 구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사·조직 컨설팅 회사 콘페리의 이종해 전무는 “말단 직원은 갓 뽑았으니 자를 수 없고, 그렇다고 조직에서 험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부장급 이상 관리자 직원을 내칠 수도 없으니 중간관리자가 타깃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중은행 인사담당자도 “과거에는 순전히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 희망퇴직을 시행했지만, 지금은 일부 차·과장급 직원들이 월급만 많이 받아가고 성과는 낮다는 지적이 나와 조직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희망퇴직 나이를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주주 달래기용 해고인가
팬데믹 기간에 중간관리자의 비효율성이 두드러졌다는 분석도 있다. 재택근무가 확산되자 중간관리자들은 열심히 일한다는 인상을 남기기 위해 각종 화상회의에 적극 참여했는데, 윗선에서 보기에 쓸데없는 참견을 하는 효율적이지 못한 존재로 비쳤다는 것이다. 메타의 한 직원은 익명 게시판에 “너무 많은 사람이 전화를 하거나 회의에 참석했다. 일종의 ‘디지털 프리젠티즘(실직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가 하락 국면에 접어들자 경영진이 주주를 달래고 주가를 띄우기 위해 중간관리자 해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피터 카펠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직원들을 자른다는 이야기는 주주들에게 달콤하게 들린다. 현재 미국 빅테크 기업에서 벌어지는 해고는 불필요한 직원들을 감싸고 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을 달래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
자칫 에이스 직원 잃을 수도
인사 전문가들은 중간관리자를 성급하게 내치면 조직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인사컨설팅 업체 뉴로리더십연구소의 크리스티 하인스 성과 책임자는 “중간관리자들은 “다수의 우려를 소수의 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들이 사라지면 리더들이 조직 내 중요한 연결고리를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능력 있는 중간관리자라도 상사와 부하 사이에 끼어서 압박받다 보면 억울하게 무능력자로 비칠 수도 있다. BBC는 “중간관리자는 관료적인 조직에서 악역을 맡다 보니 경영진과 하위 직급 동료의 압박에 모두 시달려 나쁜 평을 받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기업의 경우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일 잘하는 인재까지 유출돼 회사가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내보내고 싶은 직원은 버티고 유능한 직원은 나가겠다고 손을 드는 난감한 상황을 희망퇴직을 실시할 때마다 겪고 있다”며 “에이스급 직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달래서 주저앉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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