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다녀간 후, 섬은 생기를 찾았다

2023. 5. 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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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라는 고쿠라오리라는 면직물이 유명하다. 웬만한 호텔에는 수제 보자기, 지갑, 가방 등 고쿠라오리로 만든 특산품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에도시대 초기부터 부젠 고쿠라번(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서 하카마(일본 전통 남자 옷)와 오비(허리띠) 등을 만들었다. 날실의 리드미컬한 색감과 입체감 넘치는 줄무늬가 특징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애용한 튼튼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무명포는 일본 전국에서 왕에게 진상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쇼와 초기 전쟁 중에 전승이 끊겼다가 복원되어 현대의 천으로 부활하였다. 세로 줄무늬 또는 무지 등 그 심플한 무늬가 세련되어 인기며 오비나 기모노 외 보자기, 가방, 카드명함지갑, 넥타이 등의 제품으로 만들지고 있다. 고쿠라에는 소창이 있다. 소창은 이불의 안감이나 귀저귀감 따위로 쓰이는 피륙이다. 우리도 시골에서는 ‘호청’이라 부르기도 했다. 일본군인이 덧입던 거죽도 고쿠라 면직물을 이용해 만들기도 했다. 지명에서도 고쿠라오리를 읽을 수 있다.

아이노섬으로 가는 페리.

고양이 섬으로 향하다

아이노섬은 면적은 0.68 평방킬로미터, 97세대, 243명이 거주하고 있다. 어업이 65%를 차지하며 특산물은 자연산 미역과 톳이다. 선사시대 패총 등이 발굴되기도 했다. 아이노섬은 에도시대 밀무역선과 외국선박의 출현을 감시하기 위한 시설이 설치되기도 할 만큼 지정학적으로 외해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고쿠라의 소창으로 연락을 취했다.

고쿠라에 있는 아이노섬으로 가는 페리선착장은 소박하다. 일본의 선착장이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예술의 섬으로 트리엔날레 행사를 하고 있는 나오시마 페리선착장도 가보면 놀랄만큼 소박하다. 그래도 부족함이 없다. 우선 터미널과 전시관과 판매장 등 건물부터 짓고 보는 우리의 섬 발전 계획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아이노시마 안내도.

아이노섬으로 가는 길은 마도를 거쳐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 뱃길 양쪽은 화학공장 발전소 등이 시모노세키와 북큐슈 사이에 있고, 그 사이로 부산에서 출발해 고베와 오사카, 멀리 상하이를 오가는 화물선이 지나다닌다. 심지어 태평양을 건너는 화물선도 이 뱃길을 이용한다. 아아노섬으로 가는 뱃길 양쪽으로 간간이 어선들이 보이고 낚시객들도 보인다.

가장 먼저 고양이가 이방인을 경계의 눈으로 반긴다. 일본에는 20여 개의 섬에 고양이 섬이다. 아이노시마는 후쿠오카현 신구마치 북서쪽 약 7.5㎞에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모노세키 맞은편 고쿠라항 근처에서 출발한다. 일본의 다른 고양이 섬은 모르지만 아이노시마에는 고양이섬이지만 ‘고양이 조형물’을 보지 못했다. 대신에 중성화수술을 한 고양이만 보았다. 여행객들에게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마라는 안내표지가 있다. 고양이를 내세워 관광지를 만들려는 생각도 없는 듯했다.

일본에서 2월 22일은 고양이의 날이다.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니-양, 니-양, 니-양’이 일본어 ‘2, 2, 2(니, 니, 니)’와 비슷해 1987년에 제정되었다. 일본만 아니라 유럽에 여러 나라에도 고양이의 날이 있다. 쥐를 퇴치하기 위해 고양이를 섬에 들여온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참고로 세계 고양이의 날은 8월 8일이다. 2002년 세계동물복지기금(IFAW)와 동물단체들이 제정한 날이다(우리나라는 8월8일은 섬의 날이다). 미국은 10월 29일, 폴란드 2월 17일, 러시아 3월 1일을 고양이 날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애묘가들이 9월 9일을 고양이날로 기념하기도 한다. 우리도 고양이 섬을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다. 또 어느 지자체에서는 이를 추진하기도 했다.

아이노섬 포구와 고양이.

8명 협동조합을 만들어 연 소득이 1억원, 그런데 행복하다고

아이노섬을 찾았던 이유는 자연산 미역으로 6차산업을 잘하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이 섬은 북큐슈에서 좋은 미역을 생산하는 섬으로 유명하다. 그 미역을 지역 학교급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 주민 8명이 10년 전에 조합을 결성했다. 미역철에는 아마(あま, 물질을 하는 사람)가 자연산 미역을 채취하고, 주민들이 선별과 세척과 가공을 하며, 전량 학교급식으로 납품한다.

나머지 철에는 문어와 삼치 등 개인적으로 생업활동을 하며 생활한다. 다른 주민들도 미역과 톳을 채취하고, 삼치 등을 끌낚시로 잡는다. 우리나라 남해안 여느 섬과 비슷한 곳이다. 조합원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허름한 건물을 지었다. 부족한 돈은 은행대출을 받았다.

그 건물에 들어섰을 때 창고나 헛간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냉동저장창고, 진공포장기 등 해조류를 염장가공 하는데 필요한 시설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놀랐던 것은 지역 교육청 직원이 학생들에게 최고 품질의 미역을 주기 위해 아이노섬을 찾아 왔다는 점이다.

아이노섬 어협 사무실 겸 가공공장.

더 놀라운 것은 조합원들이 일 년에 얻는 순소득이 1억원 정도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1억엔인가 싶어서 반복해 물었는데 분명하게 ‘1억원’이라 했다. 8명이 1억원이라면 한 사람에게 얼마의 소득이 분배된다는 것일까. 그런데도 그들의 표정은 밝고 행복해 보였다.

미역을 채취할 때, 10명 정도 아마가 물질을 하고, 양에 따라 마을에 고령의 노인들이 선별작업 등을 한다. 미역가공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질 좋은 미역을 지역 학생들이 급식으로 먹을 수 있다. 급식으로 납품을 하고 남은 미역은 택배로 판매하고 있다. 다른 마을에서는 어머니 한 분이 소라, 문어, 전복 등을 이용해 밀키트를 만들어 유명백화점에 납품하기도 한다. 모든 공정은 어머니 혼자서 하고 있다. 물론 가공은 집에서 처리할 수 있는 시설들을 이용한다.

일본 어촌의 조합운영이나 가공시설의 비용은 기본적으로 개인 혹은 조합원 부담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자부담이다. 미역가공 조합의 경우도 은행 대출을 받아서 10년만에 모두 갚았다. 10년 동안 조합을 유지한 것도 대단하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꾸 우리 상황이 떠올라 답답했다. 최근 우리 어촌에서 추진되고 있는 어촌뉴딜이나 어촌신활력사업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적잖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성과나 지속성에 대해서 의문이다.

1인기업으로 대형백화점에 납품한다는 아이노섬 밀키트.

아이노섬에서 만난 우리 막걸리병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도 갯벌이 발달한 연안의 밭이나 언덕에서 종종 패총이 발견된다. 아이노섬에도 몇 곳에서 패총이 발견되었다. 그 해변 아래 해안에서 뜻밖의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물 건너 온 것들이다. 북큐슈 작은 섬에서 발견한 한국 국적의 막걸리병, 물병, 커피캔, 소주병 등이다. 이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통영산 도산막걸리다. 도다리쑥국을 안주 삼아 마셨던 막걸리다. 통영에서 고양이섬 아이노시마섬까지 400여 킬로미터를 달려왔던 것이다.

그 물길로 쓰레기만 왔을까. 고대 백제인도 오가고, 일본인 고승들도 오갔을 것이다. 섬과 연안의 백성들을 괴롭힌 왜구도, 조선을 침략한 토요토미도, 조선통신사도 저 물길을 이용했다. 일제강점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시절에는 대륙으로 군인도 건너가고 말도 배로 옮겼을 것이다.

아이노섬 해변에서 만난 우리나라에서 떠내려온 빈 술병.

산골마을에서 사셨던 할아버지도 이 길로 징용을 끌려갔다 오셔서 숨을 거뒀다. 근현대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저 물길 위에서 만들어졌을까. 막걸리 빈 병을 보고 떠 오른 생각이다. 현정부는 가깝고 먼 이웃 우리와 일본의 관계를 회복하겠다고 한다. 왜구에서 후쿠시마원전까지 모두 저 물길과 무관치 않다. 어쩌면 그 실타래를 푸는 일도 저 물길에서 시작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미래세대들에게 평화와 협력의 디딤돌이 물길에서 놓여야 한다.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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