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인과 석인이 함께 만든 인왕산 기슭 ‘서울의 쉼표’
[서울&]
나무로 만든 사람의 형상인 ‘목인’과
다시 못 올 망자의 무덤을 지켜준 ‘석인’
그 옛 돌과 나무에서 삶‘ 의 노래’ 울릴 때
환생 바라는 사람 눈길엔 온기 서린다
목인, 나무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넓게 보면 동물과 전설의 생명체를 형상화한 나무조각상까지 아우른다.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목인은 관혼상제의 의례에도 쓰였다. 특히 상례에 쓰이는 목인은 다양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망자의 여행길을 인도하고 지켜준다고 여겼다. 석인은 세상을 떠난 사람이 묻힌 무덤을 지키는 돌로 만든 사람 형상이다. 돌로 만든 양과 말, 상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갖은 생명체의 형상을 통틀어 석물이라고 한다. 환생을 믿는다면 목인과 석인을 보는 눈길에서 온기가 느껴질 것 같다. 종로구 부암동 목인박물관 목석원에 가면 인왕산 기슭에 울리는, 목인과 석인이 들려주는 삶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5월의 하늘에 울리는 석인들의 합창
문밖에서 마중하는 건 석인과 망와였다. 앙다문 이가 드러난 두 석인 중 하나는 칼을, 다른 하나는 커다란 망치를 들었다. 망치, 칼, 앙다문 이는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의미다. 기와지붕의 용마루, 추녀마루 끝을 막는 기와인 망와도 사람 얼굴 모양이다. 복과 평안을 비는 문구도 새겨졌다.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한 기원 같았다.
목인박물관 목석원 관장 김의광씨와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공간에도 목인과 돌들이 전시됐다. 마른 명태를 두드리던 돌, 돌을 달궈 배에 올려 배앓이를 치료하던 민간요법에 쓰이던 돌, 사람 손을 타지 않고 생긴 그대로 쓰던 다듬잇돌 등 이른바 ‘할머니 손은 약손’이던 시절에 실제로 사람들이 썼던 돌들이다. 호랑이를 탄 신랑신부 목인도 보였다.
김 관장의 발걸음을 따라 야외전시장으로 나갔다. 석인 사이에서 받침대에 올려놓은 세숫대야 같은 석물을 보았다. 제를 올리기 전에 손을 씻는 ‘세관’이란다. 제사 전에 손을 씻듯 석물을 돌아보기 전에 세관을 보며 마음을 씻었다.
서울·경기도의 화강암, 경기도 대리암, 경상·전라도의 응회암, 제주도의 현무암 등 지역별로 다른 재질의 돌로 만든 석물에 대한 설명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물들의 눈 코 입 귀 생김새나 표정, 손에 든 물건, 옷차림, 새겨진 기호 등을 잘 살펴보는 게 석물을 보는 또 다른 재미라는 말에 석물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주역의 11번째 기호 ‘지천태’(땅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이 만나는 만사형통의 의미)를 몸에 새긴 석인도 있었다.
제주의 석물을 모아놓은 곳을 지나 철쭉꽃 핀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무덤에 묻힌 사람의 시중을 들어준다는 동자석의 손에는 복숭아, 찻잔 등 다양한 물건이 들려 있었다. 어머니 치료를 위해 한겨울에 죽순을 찾아나선 중국 오나라의 효자 맹종의 효심 어린 눈물에 언 땅이 녹고 눈 속에서 죽순이 솟아났다는 ‘맹종의 고사’와 어머니를 위해 잉어를 잡으려 한겨울에 언 강을 체온으로 녹였더니 잉어가 스스로 물 밖으로 올라왔다는 중국 진(晉)나라의 ‘왕상의 고사’를 상징하는 죽순과 잉어를 품에 안은 석인도 보았다.
민간에서 부처로 여기고 기도를 올렸던, 이른바 ‘민불’은 그 모습이 여염집에 살던 사람들을 닮았다. 특별하지 않아서 더 빛나는, 빛나지 않아도 특별한, 그런 세상이 인왕산 기슭에 펼쳐졌다. 재앙을 막아준다는 상상의 동물 해태상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
전라북도 남원의 어떤 집 혹은 어떤 마을의 우물에 쓰였던 사각형 ‘우물돌’ 안에 누군가 놓아둔 거울에 비친 파란 하늘은 바다로, 호수로, 우물에 갇힌 하늘로도 보였다.
미처 보지 못한 석물도 있을 것 같아 보고 또 보았다. 중국, 일본, 미얀마, 타이, 영국, 캄보디아 등 외국의 석물도 있었다. 계단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갔다. 호랑이바위라 부르는 곳은 전망대다. 그곳에 올라 인왕산 기슭에 울리는 석인들의 합창을 듣는다.
또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망자의 길을 인도하는 목인들
숲속 너와집도 전시공간이다. 떡살, 먹줄을 긋는 건축 도구인 먹통, 다산의 뜻이 담긴 옛 신당의 나무조각상을 보고 너와집을 나와 한양도성 성곽 아래 난 길을 따라 걸어서 세관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목인창고(전시장)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계단으로 내려가 목인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석인이 무덤을 지키는 석물이라면, 목인은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이자 지킴이다. 목인이 많아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목인의 표정이 다 다르니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길 수 없었다.
해태를 탄 선비, 해태를 탄 신선, 악사들, 피리 부는 쌍둥이, 태극부채를 든 여인, 광대가족, 철제화관을 쓴 가족들, 저승사자, 호랑이를 탄 사람, 심청이, 해태를 안은 동자, 남사당패, 신랑신부, 살판놀이 하는 광대들, 호적을 든 여인, 본처와 첩, 군인과 일본순사…. 사람들이 다 다르게 생기고 다 다르게 살아가듯 목인들도 얼굴, 표정, 동작, 복장이 다 다르다. 환생의 믿음은 무덤을 지키는 석인과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목인의 문화를 이승 사람들 생활에 깊숙이 심어놓았다.
목인과 함께 전시장을 빛내는 것은 용수판이었다. 상여 윗부분 앞뒤에 부착하는 반원형의 판을 용수판이라고 한다. 대부분 용이나 도깨비의 형상이다. 저승으로 가는 망자의 길을 안전하게 지키는 벽사의 의미를 띤다.
1970년대만 해도 하늘의 파란색과 들녘의 푸른색을 빼면 시골은 흑백의 세상이었다. 흙먼지 날리는 미루나무 신작로를 지나는 꽃상여는 세상의 모든 색깔이 어울려 휘날리는 원색의 축제 같았다. 바람에 날리는 만장과 상엿소리를 따라 상여가 지나간 논둑길까지 너울너울 따라다니던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목인박물관 목석원에 전시된 상여 앞에서 옛 생각에 가슴이 뻐근해졌다.
목인·석인과 함께한 세월 50년
목인박물관은 2006년 생겼다.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목인박물관 목석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연 때가 2019년이다. 국내외 목인과 석물 등 1만2천 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목인 2천여 점과 석물 300여 점을 볼 수 있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5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그 첫머리에 사연이 하나 있다. 1970년대 중반이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집을 방문한 김 관장은 그 집 거실에 전시품처럼 진열된 우리나라 등잔과 요강을 봤다. 보통 사람 같으면 외국인이 우리나라 민속품을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당시 김 관장은 그 장면이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옛 생활용품에 마음을 두게 됐다. 처음 구입한 건 등잔이었다. 오래전 누군가의 집에서 밤을 밝혔을 등잔을 손에 쥔 날 그는 직접 등잔에 불을 밝히기도 했다.
옛 생활용품에서 목인으로 수집 영역을 본격적으로 넓힌 건 1980년대 중반이었다. 목인과 함께 석인, 상여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상여의 나무조각상 하나하나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렇게 모은 수집품으로 박물관을 열 수 있었던 건 그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했던 가족 덕이라는 말을 그는 잊지 않았다.
박물관 자리는 물론, 야외전시장 관람 동선까지 그가 구상했다. 그는 하나의 석물 이야기를 마치고 다른 석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허리를 굽혀 웃자란 풀을 뜯는다. 그렇게 박물관 구석구석에 닿았던 그동안의 손길로 목인박물관 목석원은 ‘서울의 쉼표’가 됐다. 그런 이곳에서 야외 음악 공연이 열렸고 앞으로도 숲속 영화제, 숲속 음악회 등을 열 계획이다. 북한산과 백악산(북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 감상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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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시간: 10:30~19:00(입장 마감 18:00). 동절기 10:30~18:00(입장 마감 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설·추석 연휴 *관람요금: 일반 1만원. 13~18살 7천원. 3~12살 5천원. *모든 관람객에게 음료 한 잔 제공. *특별전시가 열리는 5월말까지 나이에 상관없이 입장료 5천원. 문의 전화: 02-722-5055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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