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조차 안 하려는’ 일 하던 청년 이주노동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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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우즈베키스탄 청년 A 씨는 정식 비자 없이 경남 양산의 한 공장에서 일해 왔습니다.
조선소 등에서 쓰는 파이프를 재가공하는 A 씨의 일터는 상시근로자가 9명 정도인 영세업체였습니다.
많은 노동자가 쉬었던 노동절에도 A 씨는 일했습니다.
쇠파이프 더미를 뜨거운 물이 담긴 수조에 담갔다가 빼는 일이 그날 A씨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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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우즈베키스탄 청년 A 씨는 정식 비자 없이 경남 양산의 한 공장에서 일해 왔습니다.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 노동자'입니다. 조선소 등에서 쓰는 파이프를 재가공하는 A 씨의 일터는 상시근로자가 9명 정도인 영세업체였습니다.
많은 노동자가 쉬었던 노동절에도 A 씨는 일했습니다. 쇠파이프를 뜨거운 물에 담갔다 빼면 다시 공기 중에 나온 쇠파이프는 달궈진 온도 탓에 겉면이 마르게 됩니다. 이러면 금속을 보호하기 위한 피막 작업을 하기가 편해집니다.
금속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그를 보호할 안전망은 정작 헐거웠습니다.
쇠파이프 더미를 뜨거운 물이 담긴 수조에 담갔다가 빼는 일이 그날 A씨의 일이었습니다. 1.5m 깊이의 수조 안에는 67도로 유지되는 물이 1.2m 높이로 차 있었습니다. 이걸 '열탕'이라고 부릅니다. 열탕의 물이 줄어들면 일정 수위가 조절되게 수도 파이프를 열어줘야 합니다.
수도 파이프를 틀기 위해서는 성인 혼자 지나기는 좁은 공간을 지나가야 합니다. 주변에 추락을 막을만한 난간 같은 안전설비는 없었죠. A 씨는 그곳에서 열탕 테두리를 타고 넘다 발을 헛디딘 것으로 보입니다.
비명 소리를 듣고 주변에서 다른 작업을 하던 동료가 달려가 A 씨를 열탕에서 끌어올렸지만, 그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A 씨는 8일 후인 지난 9일 오전 숨졌습니다. 사인은 화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입니다.
업체 대표는 "가족조차도 이런 일은 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불법체류자인 걸 알면서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A씨가 열탕에 빠지게 된 것을 공장의 잘못을 몰아가는 건 억울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혼자서 작업하기에 충분한 일이었고, 난간이 필요하지도 않은 공간"이란 게 업체 대표의 말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의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업체가 안전에 대해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KBS 취재 결과 염화수소나 질산 같은 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이 업체는 2018년 취급 허가를 받은 이후 종사자에 대한 안전교육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며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영세업체를 중심으로 한 현장은 허점이 많은 셈입니다.
영세업체의 산재 위험은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고용노동부가 펴낸 지난해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보면 우리나라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의 10명 중 6명이 50인 미만 업체 소속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안전 교육이나 설비가 취약한 영세업체의 상황을 보면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합니다.
부산노동권익센터 유선경 노동권익부 과장은 "규모가 있는 사업장은 안전관리자 같은 담당자들을 따로 채용해서 해당 업무만 담당하지만, 영세사업장으로 갈수록 그렇지 못하다"며 "작은 사업장에 대해 지원도 해야겠지만 감독을 상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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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규 기자 (h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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