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 시대 피부색 무의미…신체 아닌 삶 전체로 봐야"

강영진 기자 2023. 5. 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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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넷플릭스, "문화적으론 흑인" 근거로 캐스팅
백인 조각·그림·기록… 흑인 간주 기록도 많아
신체적 특징보다 문화 바탕으로 평가를

[서울=뉴시스] 지난 14일 공개된 역사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넷플릭스 제작진은 '그리스 여성' 이었던 클레오파트라 7세 역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했다 (사진=넷플릭스) 2023.04.17.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고대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여왕 역할에 영국 흑인 여배우를 기용하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와 전문가들, 아랍과 그리스의 언론 매체들이 그리스 혈통인 클레오파트라 여왕을 흑인으로 묘사한 것은 잘못이라고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 미주리대 철학 및 고전학 교수인 그웬 낼리와 해밀 길버트 교수는 10일 클레오파트라 시대 로마인과 그리스인들은 피부색으로 인종을 구분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글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했다. 다음은 기고문 요약.

기원전 30년에 사망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는 물론 그리스인들에게도 큰 자랑거리다. 이집트는 클레오파트라가 현대 이집트 여성의 표상이라고 강조하고 그리스는 그리스 마케도니아인의 후손임을 내세운다.

클레오파트라의 피부색이 검다는 기록은 수백 년 전부터 나왔다. 14세기의 한 기록에는 회흑색으로 돼 있다. 셰익스피어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으로 생각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대중문화에선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라는 점이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한 이집트 변호사가 정부에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를 검열하라고 촉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불거졌다. “이집트인들의 아이덴티티”를 호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자히 하와스 전 문화재 장관도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아랍 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첫 언어로 그리스어를 사용했으며 그시대 제작된 동상이나 초상화에도 백인으로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란은 피부색을 인종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보는 현대의 인식이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임을 놓치고 있다. 고전학자들에 따르면 로마인과 그리스인들은 피부색을 인종차별의 근거로 삼지 않았다. 그보다는 환경, 지리적 여건, 조상, 언어, 종교, 관습, 문화 등이 더 큰 구분 기준이었다. 따라서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한 동상이나 그림이 클레오파트라를 백인으로 묘사한 것으로 본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이라고 볼 근거는 있을까?

넷플릭스는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전문가 셸리 할 리가 "고대 물질적 증거로 클레오파트라가 백인임을 확정할 수 없으며 문화적으로는 흑인이다"라고 말한 것을 근거로 흑인을 캐스팅했다.

할리 박사는 피부색이 인종차별의 근거가 아니었음을 밝히는 연구에 주력해왔다. 그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흑인이라면 클레오파트라도 흑인”이라고 강조했다. 클레오파트라의 겉모습이나 조상을 근거로 이미지를 결정지어선 안되며 그의 일생과 통치를 모두 감안할 때 클레오파트라의 정체성은 흑인 문화에 속한다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200년 전 이집트를 정복한 가문의 후손이다. 클레오파트라를 낳은 어머니에 대한 정보도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클레오파트라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언어를 사용한 최초의 통치자로 언급되는 등 이집트인이었다는 단서가 있을 뿐이다.

로마 시인 프레페르티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창녀 여왕”으로 부른 것은 알렉산드리아를 “해로운” 도시라 칭하고 이집트 죽음의 신 아누비스 “시끄럽다”고 욕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혐오를 드러낸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인종과 여성이라는 신분이 압제의 원인이라면서 위험하다고 강조한 표현이다. 클레오파트라의 피부색과 무관하게 클레오파트라의 행실은 그리스나 로마인 여성과는 크게 다른 것으로 알려진 것이 분명하다.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를 여성 또는 배우자로 생각하기보다 여신으로 생각했고 전사한 신 오시리스을 남편으로 여겨 아들을 홀로 키웠다. 클레오파트라는 생존을 위해 율리우스 케사르에 이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함께 한 실용주의자였으며 옥타비아누스에게 붙잡힌 뒤 스스로 자살했다.

할리 박사는 클레오파트라의 일생은 흑인 여성에 대한 억압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당대 이집트인이나 그리스인 모두 클레오파트라를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면서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으로 묘사하면 흑인 여성에 대한 억압 역사를 부각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인종적 차이보다는 문화적 공통성을 더 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피부색 등 물리적 차이로 인종을 나누고 차별을 한다. 인종의 물리적 차이 못지않게 인종의 역사를 모르면 현대의 인종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인물이며 우리는 클레오파트라의 신체적 특징이 아닌 삶 전체를 근거로 그를 인식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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