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혼돈이 끝나지 않은 이유 [모니터 딜로이트]
김희준 모니터 딜로이트 파트너
2022년 6월 이후 지난 10개월 간 국내 자본시장을 명시적으로 설명하는 키워드 하나를 선정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필자는 ‘혼돈’을 선택할 것이다.
선진 자본시장 대비 덩치가 작은 대한민국의 자본시장은 합리와 이성보다는 ‘카더라’와 ‘가즈아’가 지배하는 경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혼돈은 과거 유사 사례를 비교해 보더라도 정도가 많이 달랐다. 세번, 네번 내리 당한 자이언트 스탭이라는 금리 인상은 지난 30년 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대형 악재였고 자본시장은 할말을 잃었다. 눈치 없는 지자체 산하기관이 디폴트를 선언했다 급히 말을 주워담았고,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의 우량 프로젝트 파이낸싱(PF)가 연장에 실패했으며, 신용등급이 우량한 초대형 공기업이 월급쟁이 주담대 금리보다 높은 6%라는 높은 이자에 수십조를 빌려갔다. 자본시장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돈의 시기였다.
사람들은 2008년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한 후 생겨난 신조어 ‘뉴노멀’이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 쓰기 시작했다. 미국 기준금리 5%의 시대. 무위험 자산에 5%의 이자를 지급해야 하니, 아무리 날고 긴다는 기업도, 실력 좋은 운용사도 이보다 싼 이자에 돈을 융통할 수는 없을 터다.
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이건 뉴노멀이 아니라 ‘노멀’로의 회귀다. 장기간 극단적으로 낮았던 금리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노멀 혹은 뉴노멀인지 명확하지 않은 이 시대에 VC(벤처캐피탈)와 M&A시장은 어떻게 될까? 물론 전문가조차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려 한다.
스타트업과 VC 붐이 다시 올까?
불과 1년 전만 해도 시장에는 유동성 자금이 넘쳐났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자금은 여기 저기 자산가격을 높였고 벤처캐피털(VC)시장은 대활황을 맞았다. 개인 투자자가 넘쳐나는 주식시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전문가들이 이름을 걸고 투자하는 VC 시장에서도 ‘버블성’ 붐이 있는 사례는 흔치 않았다. 생애주기 상 이익을 내기 어려운 창업 초기 스타트업이라도, 수익을어떻게 창출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이 있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수익모델에 대한 질문을 물어보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바이오 투자에서 그랬고, 가상화페(cryptocurrency), 메타버스 분야 투자에서도 유사했다. 가치는 믿음에서 나온다는 종교적 철학이 투자 대상 기업의 펀더멘털보다 중요했다. 믿음의 유행을 따라 수십조의 자금이 집행되었고, 유행은 경로의존성에 의해 대세가 되었다. 저금리의 시대가 길어지다 보니, 대세를 믿고 집행된 프로젝트들도 당연히 다음 투자자에게 좋은 밸류로 매각되었다. 역시 가치는 믿음에서 나오나 보다.
이렇게 형성된 믿음의 연쇄는 불신이 생기는 순간 공포의 연쇄효과가 뒤따른다. 믿음이 굳건하더라도 시장에 자금이 마르면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수익은 나지 않는 기업이 수익을 내려면 투자는 계속 해야 하고 따라서, 몇 달 안에 다음 라운드 투자를 받지 못해 파산하는 스타트업이 한 두 군데는 아닐 것 같아 걱정이다.
이렇게 투자기업이 파산하면 VC는 한 푼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제로 투 원 (Zero to One)’이 ‘원 투 제로(One to Zero)’가 되는 순간이다. 아직까지 유니콘이 파산했다는 뉴스는 들리지 않지만, 들리기 시작하면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한번 깨어진 믿음은 한 세대가 바뀌기 전에는 잘 회복되지도 않는다. 돌이켜보면 2000년대 초 닷컴버블 이후 심사역들의 세대가 바뀌는 데 20년이 걸렸다. 이 시간에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밤새워 코딩하는 성실한 창업자 분들이 부디 피해를 입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M&A 시장은 살아날까?
작년 하반기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첫눈이 내리기 전에 일찌감치 장부를 닫았고, 돈을 구해야 하는 운용사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블라인드 펀드를 들고 있는 잘 나가는 운용사들도 호시절의 호가를 기억하고 있는 매도인의 눈높이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딜은 없다시피 했다. 성미 급한 호사가들은 M&A 호시절이 끝났다고들 했다. 그렇지만 펀드들이 담아 놓은 포트폴리오는 어디 가지 않고 쌓여 있다.
철이 바뀔 때 마다 저금리에 조달한 펀드의 만기는 속속 도래하겠지만, SI (전략적 투자자) 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다. 그 동안 펀드운용사들의 정보력과 실행력에 밀려 M&A 시장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기업들에게는 지금이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투자액의 단위가 크기 때문에 운용사도 기관도 딜마다 숙고하는 M&A 시장 특성 상 VC만큼 불신과 공포의 연쇄가 빨리 올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자산가격 상승의 광풍이 비단 VC시장에만 불었던 것은 아니기에, 몇몇 M&A 프로젝트가 목표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M&A 시장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 기업은 애초에 투자를 잘 받지 못하므로, 원금을 모두 날리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호흡이 긴 M&A 펀드와 시장 특성 상, SI들이 사모펀드 운용사 포트폴리오의 자산을 주워담는 몇 해가 지나면, 운용사들은 그 돈으로 또 다음 딜을 도모하리라 예상된다. 이렇게 경험을 쌓은 운용사와 기관들은 실패를 딛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옥석이 가려지는 시장의 정화작용에 기대를 걸어보자.
위기는 끝난 것일까?
창업한 지 40년된 미국은행이 이틀만에 문을 닫고,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스위스 투자은행이 팔려주인이 바뀌었다. 15년 전 금융위기의 교훈을 새겨 선진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발빠르게 개입했고, 위기는 진화되는 듯했다. 이제 한고비 넘은 것인가?
그렇다면 참 좋겠지만 워낙 가파르게 오른 기준금리 탓에 많은 기관들이 장단기 금리역전으로 인한 역마진에 떨고 있다. 30년간 세계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아주었던 저개발 초강대국은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좌시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넓게 보지 않더라도 전 국민이 주담대와 전담대를 끼고 앉아있는 대한민국은 미국의 금리인상을 따라갈 체력이 되지 않는다. 금리를 따라 올리지 못하면 환율은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M&A시장 낙관론도 거시경제 전망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는 전제다. 호시절에 수립된 전략은 닥쳐올지 모르는 재난을 감안해 수정되어야 하고, 성급하게 투자된 포트폴리오들은 냉졍하게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 클래식과 미술의 모든 것 '아르떼'에서 확인하세요
▶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영끌족' 버티기 통했나…4억이던 상계주공, 2개월 만에 '반전'
- "챗GPT가 썼네"…감별기 만든 22세 대학생 46억 '잭팟'
- "이건 못 참지" 예능서 먹더니 품절대란…대박 난 제품 정체
- 430억 전세사기 공범이 왜?…'건축왕' 딸, 법원에 회생신청
- "세금 더 내게 해달라" 이례적인 '이 나라' 부자들
- 박칼린vs나르샤, 法 "美 남성 스트립쇼에서 볼 수 있어"
- "다리 14cm 길어져"…2억 '사지 연장술' 강행한 女모델
- "인도 총리 고소하고 싶어"…파키스탄 여배우의 저격
- "쇼핑 즐기는 북한 소녀"…유튜버 영상에 또 샤넬 가품?
- "각 살아있네" BTS 정국·원빈 탔던 그 차…50만대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