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오염수’ 대신 ‘처리수’라고 쓰자고?…“한국이 나서서 왜”

이정호 기자 2023. 5. 1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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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서 ‘처리수’ 용어 검토 목소리
“청정하다 이미지 주려는 일본의 의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주변에 오염수 저장탱크들이 설치돼 있다. 현재까지 130만t의 오염수가 1000여개 탱크에 나뉘어 보관돼 있다. 이 사진은 올해 2월 촬영됐다. AP연합뉴스

최근 여당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에 노출된 ‘오염수’를 ‘처리수’ 또는 ‘오염 처리수’로 부르자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처리수는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쓰는 말로, 청정하게 정화됐다는 의미를 강조한 표현이다.

국민의힘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인 성일종 의원은 11일 SBS라디오에 출연해 “바깥으로 방류하는 물에 대해서는 일단 처리해서 나가는 것이므로 ‘오염처리수’라 쓰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일부 과학계와 시민단체는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에 접촉한 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처리수라는 표현을 왜 한국이 써야 하느냐며 반문한다. 과학적으로 봐도 현재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지상 탱크에 저장 중인 오염수의 66%는 방사성 물질 기준치를 넘는다.

게다가 현재 지구에 있는 어떤 정화 기술을 써도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는 오염수에서 제거할 수 없다. 바다에 방류되는 순간까지도 오염이 완전히 ‘처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한국이 나서서 일본이 강조하는 처리수라는 용어를 굳이 쓰려는 건 온당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인 도쿄전력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처리수를 “삼중수소 외 방사성 물질이 안전에 관한 규제 기준치를 확실히 밑돌 때까지 ‘다핵종 제거설비(알프스·ALPS)’ 등으로 정화 처리한 물”이라고 정의한다. 현재 이런 물은 후쿠시마 원전 근처 탱크에 보관된 총 130만t 오염수의 34%를 차지한다는 게 일본 측 설명이다.

주목되는 점은 안전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한 나머지 66%의 물을 지칭하는 용어다. 도쿄전력은 이를 ‘처리도상수’라고 부른다. 정화 처리 과정에 있는 물이라는 뜻이다.

도쿄전력 자료에 따르면 처리도상수에는 기준치를 살짝 넘는 물도 있지만 기준치의 최고 1만9000배를 넘는, 독한 방사능을 뿜는 물도 있다. 그런데도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뽑아내 저장한 어떤 물에도 ‘오염수’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에서 ‘처리수라는 용어 사용을 검토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반응을 보인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한국 원전에서는 후쿠시마 원전보다 정화를 훨씬 더 잘 해서 내보내는 물에도 ‘배출수’라는 용어를 쓴다”며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물을 처리수라고 부르는 건 언어도단”이라고 강조했다. 한 소장은 “처리수라는 용어는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준다”며 “한국에서 처리수라는 용어를 쓰자고 주장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게다가 도쿄전력이 처리수의 기준에서 스스로 밝혔듯 방사성 물질 가운데 하나인 삼중수소는 현재 존재하는 어떤 정화 기술로도 걸러낼 수 없다. 바다에 방류되는 순간까지 완전한 의미의 ‘처리’는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주요국 언론인 영국 BBC와 미국 CNN,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등에선 자신들이 작성한 기사에 대체적으로 ‘오염수(contaminated water)’ ‘폐수(wastewater)’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물이 무엇에 오염됐는지 독자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방사성 물(radioactive water)’이라는 표현도 쓴다. 다만 일본의 조치나 주장을 나타내는 문장에선 처리수(treated water)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 미래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흘러나와 지상 탱크에 저장된 물의 66%는 도쿄전력이 스스로 밝힌 자료로만 봐도 방사성 기준치를 초과한다”며 “이것이 오염수이지 어떻게 처리수냐”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처리수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의 논리”라며 “오염을 감추기 위한 술수”라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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