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차밭과 토지…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김명상 2023. 5. 11. 14:43
26년간 집필한 소설 ‘토지’ 품은 평사리
박경리 문학관에는 작가의 육필 원고가
차를 체험하며 담소 나누는 모암마을
하동의 멋진 비경을 관람하는 스타웨이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 5월 4일 개최
백 년 차밭의 시간을 체험하다
박경리 문학관에는 작가의 육필 원고가
차를 체험하며 담소 나누는 모암마을
하동의 멋진 비경을 관람하는 스타웨이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 5월 4일 개최
[경남 하동=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경남 하동에선 급할 것이 하나 없다. 문학세계에 빠져 차 향기를 음미하며 신선놀음을 해도 하나 이상할게 없는 고장이어서다. 이를테면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평사리에서 하릴없이 거닐고 차를 마시고 느긋하게 책을 읽어도 누구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없다. 해가 진 뒤에는 평상에 누워 쏟아지는 별빛을 두 눈에 담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하늘만큼 광활해진다. 근심과 걱정마저 ‘모두 다 지나가리라’는 격인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슬로시티 하동에서의 여행은 보통 이렇다.
대하소설 ‘토지’의 실제 무대가 된 평사리
소설가 박경리가 26년간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는 한국 현대문학이 거둔 최고의 성취로 꼽히는 작품이다. 총 5부 25편 362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지주인 최참판댁의 외동딸 서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민족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극복 과정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요 무대는 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다. 실제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는 ‘최참판댁’이 있다. 소설 속 공간을 재현한 곳으로 연간 100만 명이 찾는 하동군의 대표 명소다. 소설 속 고택이 이곳에 떡 하니 자리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토지는 지금까지 드라마로 세 번 제작됐는데 가장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버전은 1987년 배우 최수지가 주인공 서희로 분한 KBS 2TV 작품이다. 2년간 총 120회가 방영된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한 후 사람들은 드라마를 추억하며 주 무대인 평사리로 몰려들었으나 당시 최참판댁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쉬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하동군은 IMF 외환위기를 맞은 1998년에 예산 30억 원을 들여 1만㎡ 넓이의 땅을 사서 2001년 최참판댁을 준공했다.
이 소설의 주요 무대는 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다. 실제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는 ‘최참판댁’이 있다. 소설 속 공간을 재현한 곳으로 연간 100만 명이 찾는 하동군의 대표 명소다. 소설 속 고택이 이곳에 떡 하니 자리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토지는 지금까지 드라마로 세 번 제작됐는데 가장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버전은 1987년 배우 최수지가 주인공 서희로 분한 KBS 2TV 작품이다. 2년간 총 120회가 방영된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한 후 사람들은 드라마를 추억하며 주 무대인 평사리로 몰려들었으나 당시 최참판댁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쉬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하동군은 IMF 외환위기를 맞은 1998년에 예산 30억 원을 들여 1만㎡ 넓이의 땅을 사서 2001년 최참판댁을 준공했다.
소설을 바탕으로 지은 집이지만 철저한 고증을 통해 등장인물의 공간을 오롯이 담아냈다. 주인공 최서희의 공간인 별당채를 비롯해, 최참판의 사랑채, 최서희의 할머니 윤씨 부인의 안채 등을 그대로 재현해 팬들의 향수를 자아낸다. 소설 마지막에서 주인공 서희는 일본의 패망 소식을 듣는다. 그러고는 해당화 가지를 잡고 주저앉아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소설의 대단원에 등장한 해당화는 최참판댁 담장에 피어 있으며 방문객에게 환희의 순간을 전하고 있다.
지리산 청정 자연과 섬진강 강물이 만든 들판
최참판댁 앞에는 274만여㎡(약 83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평사리 들판이 펼쳐져 있다. 지리산 청정 자연과 섬진강의 풍부한 수량이 옥답을 만든 곳이다. 2022년 경상남도 대표 우수습지로 지정된 하동 동정호도 이곳에 있다. 삼국시대 때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할 당시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호수를 보고 당나라 악양의 동정호와 비슷하다고 해서 부른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동정호 안에 있는 작은 섬을 연결하는 하트 출렁다리는 연인들의 인기 장소.
최참판댁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부부 소나무’가 서 있다. 넓은 들판에 딱 두 그루만 서 있는데 이곳이 소설 토지의 배경이라 남녀 주인공의 이름을 붙여 서희와 길상나무라고도 부른다. 5대째 만석꾼인 최참판의 명성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땅이 있을까 싶다.
작가 박경리는 토지를 쓰기 전 평사리를 다녀간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는 2001년 판 토지 서문에서 “지도 한 장 들고 한 번 찾아와 본 적이 없는 악양면 평사리, 이곳에 ‘토지’의 기둥을 세운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연치고는 너무나 신기하여 과연 박 아무개의 의도라 할 수 있겠는지, 아마도 그는 누군가의 도구가 아니었을까. 30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고 술회했다.
작가 박경리는 토지를 쓰기 전 평사리를 다녀간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는 2001년 판 토지 서문에서 “지도 한 장 들고 한 번 찾아와 본 적이 없는 악양면 평사리, 이곳에 ‘토지’의 기둥을 세운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연치고는 너무나 신기하여 과연 박 아무개의 의도라 할 수 있겠는지, 아마도 그는 누군가의 도구가 아니었을까. 30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고 술회했다.
토지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평사리에는 박경리 문학관도 생겼다. 최참판댁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문학관에는 박 작가의 육필 원고와 토지의 주요 줄거리, 등장인물도, 관계도, 박경리 어록 등이 전시돼 있다. 그야말로 삶의 모든 것을 토지 집필에 쏟아 넣은 박경리 작가는 1971년 8월 암 수술을 받고 보름 만에 퇴원한 당일에도 가슴에 붕대를 감고 원고 100매를 썼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던 박 작가의 의지는 지금도 찾아온 이들을 숙연하게 하고 있다.
백 년 차밭의 시간을 체험하다
하동은 차(茶)의 고장이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828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이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흥덕왕이 하동의 지리산에 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동 화개면의 쌍계사 주변이 차나무 시배지로 알려져 있다.
화개장터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모암마을은 차를 체험하고 마시기에 좋은 곳이다. 마을 입구부터 경사가 심한 산등성이에 조성된 야생차밭이 눈에 띈다. 보성 차밭과 같이 SNS 감성이 나도록 예쁘게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서 좀 더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든다. 이곳에는 직접 차를 재배하고 민박이나 카페 등을 겸하고 있는 농가가 120여 곳에 이른다. 차를 직접 가꾸고 만드는 사람과 함께 아담한 차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프로그램이 인기 코스다.
화개장터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모암마을은 차를 체험하고 마시기에 좋은 곳이다. 마을 입구부터 경사가 심한 산등성이에 조성된 야생차밭이 눈에 띈다. 보성 차밭과 같이 SNS 감성이 나도록 예쁘게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서 좀 더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든다. 이곳에는 직접 차를 재배하고 민박이나 카페 등을 겸하고 있는 농가가 120여 곳에 이른다. 차를 직접 가꾸고 만드는 사람과 함께 아담한 차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프로그램이 인기 코스다.
주민에게 왜 하동 차가 유명하냐고 물으니 “이것 말곤 할 게 없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리산 급경사에는 다른 농작물보다 차를 키우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란다. 환경도 최적이었다. 연평균 15도 내외의 기후, 풍부한 강수량, 물 빠짐이 좋은 경사지, 미네랄 성분이 가득한 토양, 운무가 자주 발생하는 다습한 환경이 차 재배에 최상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차 체험을 위해 ‘만수가 만든 차’를 찾아갔다. 100년이 넘은 차밭에서 직접 재배한 찻잎을 쓰는 곳이다. 차 체험을 신청하고 가면 1시간 동안 여유롭게 2~3종류의 차를 음미할 수 있다. 체험에는 무를 삶아 만든 무정과와 함께 도라지정과 생강, 감자칩도 나와 입을 즐겁게 한다.
차 체험을 위해 ‘만수가 만든 차’를 찾아갔다. 100년이 넘은 차밭에서 직접 재배한 찻잎을 쓰는 곳이다. 차 체험을 신청하고 가면 1시간 동안 여유롭게 2~3종류의 차를 음미할 수 있다. 체험에는 무를 삶아 만든 무정과와 함께 도라지정과 생강, 감자칩도 나와 입을 즐겁게 한다.
매장 입구에는 가득 쌓인 장작과 무쇠솥이 있는데 다가가니 화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여기서는 수확한 찻잎을 전통방식 그대로 솥에 장작불을 피워 덖는다. 곡우 전에 딴 차를 우전차라고 하는데 맛과 향이 가장 뛰어나 찻잎 중 최상품으로 친다. 우전차에는 아미노산 성분이 많아서 맛이 달고 고소하다. 한편으론 떫은맛이 느껴졌다. 이날 팽주(차를 우려주는 사람)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차는 맞고 틀린 게 없습니다. 각자가 느끼는 입맛이 다 다르니까 떨떠름한 맛이 나기도 하죠. 그저 기호나 취향에 따라 즐기면 그만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맛본 차는 50g에 20만원이나 한다는 특등급 우전차. 엄지손톱 크기의 작은 잔에 감질날 정도의 양만 내어준다. 바로 마시지 말고 입에 머금고 있다가 넘기는 것이 정석. 따라하니 단맛이 계속 목젖을 타고 올라올 정도로 향이 좋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가격은 큰 장벽. 여름철에 큰 병에 담아 넣고 먹고 싶다고 하니 굳이 비싼 차를 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뜨거운 물 말고 찬물에 찻잎을 넣어두면 천천히 우러나오면서 구수하고 맛있는 차가 됩니다. 이런 경우 우전 대신 세작, 중작을 써도 됩니다.”
느릿느릿한 반달곰 사는 의신마을
이날 맛본 차는 50g에 20만원이나 한다는 특등급 우전차. 엄지손톱 크기의 작은 잔에 감질날 정도의 양만 내어준다. 바로 마시지 말고 입에 머금고 있다가 넘기는 것이 정석. 따라하니 단맛이 계속 목젖을 타고 올라올 정도로 향이 좋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가격은 큰 장벽. 여름철에 큰 병에 담아 넣고 먹고 싶다고 하니 굳이 비싼 차를 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뜨거운 물 말고 찬물에 찻잎을 넣어두면 천천히 우러나오면서 구수하고 맛있는 차가 됩니다. 이런 경우 우전 대신 세작, 중작을 써도 됩니다.”
느릿느릿한 반달곰 사는 의신마을
경치 좋은 모암마을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지리산 정기 머금은 차를 즐기고 싶다면 놀루와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숙소 ‘모암차차’에 가면 된다. 원룸형과 한옥형 두 가지 형태를 갖춘 모암차차는 차밭과 계곡을 캔버스 삼아 멍하니 바라보며 힐링하는 숙소다. 진정한 슬로우 라이프나 자연 속에 파묻혀 일상의 피로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 알맞은 곳이다.
차 애호가라면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를 추천한다. 다음달 3일까지 하동스포츠파크와 하동야생차문화축제장 등에서 열리는 축제는 하동 햇차를 왕에게 진상하는 ‘왕의 차 진상식’, 차를 주제로 한 ‘한복 패션쇼’, 차를 활용한 음식을 선보이는 ‘세계 티푸드 경연대회’, 명인 토크콘서트, 케이팝 콘서트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모암마을에서 16㎞ 거리에 있는 스타웨이는 최근 하동의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지리산과 평사리 들판, 섬진강을 바라보는 곳에 세워진 곳으로 전망대와 카페가 있다. 하늘에서 보면 별 모양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섬진강 수면에서 150m 높이에 건립돼 소설 토지의 주 무대와 하동의 멋진 비경을 관람할 수 있다.
의신마을 베어빌리지 역시 하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다. 이곳에선 반달가슴곰 두 마리를 볼 수 있다. 어미인 22살 ‘산’과 17살 딸인 ‘강’이다. 어미의 원래 이름은 ‘막내’인데 2001년 지리산에 방생했으나 사람을 너무 좋아해 따라다니다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야생에 적응하지 못해 회수됐고 보호 과정을 거쳐 지금은 지리산에서 따온 ‘산’이라는 이름으로 의신마을의 베어빌리지에 살고 있다. 직접 가보니 커다란 곰이 어슬렁대며 걸어 다니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가까이서 곰의 생태를 직접 볼 수 있는 장소라 아이들 체험학습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김명상 (terry@edaily.co.kr)
김명상 (terr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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