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약탈·파괴를 꼬집다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이라크계 미국인 작가 마이클 라코위츠의 국내 첫 개인전이 서울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오는 7월30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이라크계 유대인이란 배경으로 이라크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해야만 했던 가족의 이주사와 전쟁에 의해 소실된 이라크 메소포타미아 문화 유적을 재현하고 되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시 제목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칼후의 북서 궁전, F실, 남동쪽 입구; S실, 남서쪽 입구)'는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 제목과 같다.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느부갓네살 2세의 치세인 기원전 575년에 건설된 이슈타르의 문을 지나 바빌론시 중심으로 이어지는 '행진의 거리'의 명칭 '아즈-이부르-샤푸(Aj-ibur-shapu)를 번역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연작은 이라크전 이후 약탈당한 이라크 국립박물관 유물을 되살리는 프로젝트이다. 2015년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IS)가 신 아시리아 왕국 아슈르나시르팔 2세(기원전 883-859년)의 명에 따라 건설된 칼후의 북서 궁전을 파괴하자, 작가는 이 연작 프로젝트의 새로운 장인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칼후의 북서 궁전)'을 2018년부터 선보이고 있다.
'칼후의 북서 궁전, F실, 남동쪽 입구; S실, 남서쪽 입구'는 궁전 공간의 정확한 위치로, F실 오른쪽 벽면과 남동쪽 입구에는 다섯 개의 석판이 늘어서 있었고, S실 남서쪽 입구 양쪽에는 두 개의 석판이 있었다.
작가는 거주지인 미국 시카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아랍어-영어 신문과 중동 음식 포장재를 활용해 파피에 마세 기법으로 이 벽면을 재구축한다.
부조는 성스러운 나무와 각 석판 가운데를 따라 새겨진 '표준각인' 사이로 인간이 새의 머리를 한 날개 달린 반신 '압칼루'가 서 있는 모습이다.
석판은 원본 유물의 건축적 발자취를 따라 설치되어 있는데, 원본 석판에서 사라진 부분에는 고고학전 변천사나 ISIS의 파괴 이전에 기존에 현지에서 약탈되거나 분실되었음을 나타내는 레이블이 표시되어 있다. 이 레이블은 사라진 조각 대부분이 서구권 기관에 소장되어 있고 유물의 국외 반출이 사실은 훨씬 이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단 점을 보여준다.
영상작 '특수부대원 코디의 발라드'는 미군 캐릭터 인형 코디(Cody)가 시카고 대학 동양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는 메소포타미아 봉헌상과 교감하는 장면을 스톱모션을 통해 전달한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주둔 미군 기지에서만 판매되는 이 인형은 사실 2005년 이라크의 무장 단체가 인질로 잡은 미군 사진의 실체로 밝혀지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인형은 파병 군인들이 자기를 대신할 장난감으로 자녀들에게 많이 보낸 물건이었다. 수메르의 봉헌 조각상도 이와 비슷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헌신과 신앙을 담아 자신을 대신하는 물건으로서 바쳤던 것들이다.
코디는 고대와 현대, 사물과 실제 인간 경험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대리인이자 맥길-프래더(2005년 이라크 파병 군인)의 충격적인 경험담을 통해 개개인으로서 미군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전쟁의 양가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영상은 코디가 진열장 속에 갇혀 있는 봉헌 조각상들에 함께 탈출하자고 하지만 그들은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코디도 온순히 수메르 조각상 옆에 스스로를 배치해 안치됨을 택한다.
전시장 2층의 영상 설치작 '리턴'은 작가의 자전적 유산을 통해 이라크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암묵적 압박을 우회해 보여주는 작업이다.
작가는 이라크산 대추야자 열매가 UN의 대이라크 제재(1990-2003)가 해제된 후에도 레바논산 제품으로 둔갑해 유통되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미국에 수입하기로 결심했다.
'리턴' 프로젝트의 영상 파트는 이라크로부터 미국까지 제품을 수입해 오는 길고 지루한 과정을 관료주의적 행태부터 수많은 검역소를 하나하나 거칠 때마다 겪어야 했던 가열찬 논쟁에 이르기까지를 상세히 기록해 보여준다.
이라크인에게 있어 대추야자는 석유에 이은 제2의 수출 품목이자, 태어날 때 '달콤한 인생'을 살라는 의미에서 처음 물려주는 열매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식물이다. 하지만 이런 대추야자는 전쟁을 겪으면서 수천만 그루에서 수백만 그루로 줄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던 유물과 그 기원이 제국주의 열강의 도굴과 전쟁으로 인해 파헤쳐져 버렸다고 말한다. 이라크전이 일어난 지 20년이 됐지만, 사람과 문화유산의 뿔뿔이 흩어짐은 이라크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는 역설한다.
라코위츠는 2020년 내셔 조각상과 2018년 허브 앨퍼트 예술상을 수상했다. 2012년 티파니 재단상, 2008년 크리에이티브 캐피털상, 샤르자 비엔날레 심사위원상, 2006년 뉴욕 건축 및 환경 구조 예술 펠로우십 등도 받았다.
현재 시카고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며, 노스웨스턴대학교의 미술 이론 및 실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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