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엔데믹은 장기전의 시작이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위기 경보를 경계로 하향 조정하고 격리와 마스크 착용 의무까지 해제하며 사실상 엔데믹(풍토병화)을 선언했다. 코로나19 감염자 관리와 방역 대응을 계절성 독감처럼 일상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20년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뒤 도입된 대부분의 방역규제가 사라졌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내렸던 ‘국제 보건위기 비상사태(PHEIC)’를 해제한 데 따른 국가별 후속 조치에 해당한다.
WHO는 이달 5일 코로나19와 관련한 사망자와 중환자실 입원환자가 지속해서 줄고 있고 면역력을 가진 인구가 높은 수준에 이른다며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WHO의 비상사태 해제 결정은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방역 조치에도 적잖은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은 아직까지 완벽한 일상회복까지 최종 단계가 남았지만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아예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각국이 이처럼 일상회복에 나선 것은 코로나19를 일반 유행병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유행 기간에 나타난 사회경제적 퇴보를 더는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 점에서 비상사태 해제는 코로나19 이전 삶으로 복귀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완벽한 일상 회복까지는 아직 몇 가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의 피해 규모와 범위를 정확히 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확한 피해 규모 산정이야말로 살아남은 이들의 치유를 위한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3년간의 감염병 사태의 피해는 단순한 감염 현황만 봐도 참담하다. 11일 WHO에 따르면 코로나19 첫 감염자 발생 이후 이날까지 전 세계에서 7억6590만3278명이 감염됐으며 이 중 692만7378명이 숨졌다. 불과 3년 새 인구 670만명의 레바논 규모의 국가 하나가 지구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뜻이다. 한국전쟁 사망자(250만~300만명 추정)의 두 배에 이르는 인구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숨진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돌봄 시스템 붕괴, 의료시스템 포화, 봉쇄 조치로 실제 사망자가 2000만명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초기대응을 잘했다는 국내에서도 3135만1686명이 감염됐고 이 중 3만4583명이 숨졌다. 코로나19 후유증인 롱코비드 증상을 앓는 환자나, 최근 연구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백신 부작용의 희생자 규모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WHO와 각국 정부의 종식 선언이 자칫 코로나19 사태의 완벽한 종료라는 잘못된 메시지로 오인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위협적인 변종 출연이 잠시 멈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유발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전파되면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계속 발생할 수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면역학자인 브리지트 오트랑 소르본대 명예교수는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잠시 바이러스가 사라졌다고 착각하는 순간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섣부른 방심을 경고했다. WHO의 말대로 예방 접종과 자연면역을 통해 초기보다 감염 위험이 줄었다고 해도 노인과 허약자, 면역 저하자에겐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가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60대 이상 고령자를 중심으로 지금도 하루 평균 10명씩 가족의 곁을 떠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편에선 코로나19 위기 종식 선언이 나오기 무섭게 벌써 다음 감염병에 대한 경고까지 나온다. 미국 전염병 전문가들은 최근 향후 2년 내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에 필적하는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할 확률이 약 20%라는 경고를 백악관에 보냈다고 한다. WHO도 “어디에선가 새로운 변종이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며 “각국 정부가 계속해서 경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런 점에서 WHO가 최근 새롭게 업데이트한 코로나19 대응전략은 한국처럼 일상회복을 서두르는 국가들은 참고할만하다. WHO는 엔데믹 단계에서 필요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 백신 접종률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을 꼽았다. 여러 부작용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백신은 급격한 확산을 막고 공동체의 면역력을 유지하는 유용하고 과학적 수단이다. WHO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의료 종사자의 89%, 노인의 82%, 일반 인구의 66%가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받았다고 집계했다. 하지만 저소득 국가에선 접종률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한국처럼 1차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도 시간이 지나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저조한 추가 접종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감시 시스템을 유지하는 일도 숙제로 남아 있다. 보건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올해로 4년 차에 접어들면서 각국이 벌써부터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감시 자원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의 ‘그라운드제로’이던 중국 우한 야생 동물 시장의 사례처럼 야생 동물과 가축에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나 세균이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추적하는 ‘원헬스’가 국제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아울러 각국 정부가 펼친 학교와 공공장소 봉쇄, 재택근무, 모임 금지, 감금, 통금 시간 부여 같은 방역 정책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거뒀는지 평가하는 일도 숙제로 남아 있다. 여기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는 향후 감염병 사태 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조기 개입’은 감염병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방안이라는 교훈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다시 한번 입증됐다.
언젠가 인류를 위협할 또 다른 바이러스에 대비해 백신과 치료제 개발 체계에 대한 재점검도 이뤄져야 한다. 인류를 위협하는 유례없는 감염병 사태로 세계 과학계 역시 전례 없는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사태 초반부터 중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쏟아진 35만건 이상의 보고서와 논문, 데이터가 공유되면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신속하게 이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신약후보 물질에서 치료제를 발굴하려는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렘데시비르를 제외하고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고, 코로나 사태의 게임체인저 역할을 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반의 백신 역시 선진국들이 점유하면서 저개발국가의 백신 불평등 문제는 해소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 역시 합성항원 방식의 백신을 개발했지만 사태가 잦아들며 시장을 찾지 못했고, mRNA 같은 핵심 범용 기술 역시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연구개발(R&D) 정책과 추진체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보건 전문가와 과학자들은 엔데믹을 관리하는 일이 팬데믹을 관리하는 것만큼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의 한 보건 전문가는 최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대응 역량은 일상회복을 앞둔 지금이 최고 수준”이라며 “정부가 다음 새로운 감염병 사태가 올 때까지 대응역량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큰 과제”라고 말했다. 세계은행은 최근 코로나19로부터 얻은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기간 중 각국 대응이 “하늘을 날면서 타고 가는 비행기를 만드는 것과 같았다”고 평가했다. 갑작스러운 감염병 사태가 얼마나 긴박했고, 대응 과정도 좋게 평가하면 임기응변, 나쁘게 평가하면 주먹구구였는지를 비유하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팬데믹을 또다시 같은 식으로 맞아서는 안 된다는 뼈저린 반성으로 들린다.
코로나19의 가시적 위기가 사라지면서 WHO와 유럽연합,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같은 국제기구와 권위있는 기관들은 최근 코로나19 사태의 교훈과 과제를 담은 보고서들을 앞다퉈 공개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내용이 한결같다. ‘증거에 근거해 판단하라, 그리고 과학을 따르라’는 것이다. 일상회복에만 매달려 다음 팬데믹 대비에 소홀한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의 위기종식 선언은 어쩌면 끝이 아닌 새로운 장기전의 시작이다.
[박근태 사이언스조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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