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라과 독재 정부, ‘92년 역사’ 적십자사까지 해산

최서은 기자 2023. 5. 1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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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니카라과 반정부 시위 당시 경찰과 충돌 이후 부상당한 시민이 치료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와 비정부기구(NGO) 탄압을 이어오고 있는 니카라과 정부가 국제 인도주의 단체인 적십자사를 해산시키고 재산까지 몰수했다.

중남미 매체 인포바에 등에 따르면 니카라과 의회는 10일(현지시간) 적십자사를 폐쇄하고 보건부 산하에 똑같은 이름으로 새로운 적십자사를 창설하도록 하는 법률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1931년 니카라과에서 활동을 시작한 기존 적십자사는 92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니카라과 의회는 2018년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당시 적십자사가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국제 적십자 기본 원칙을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또 적십자가 세금 신고를 누락하고 재무제표와 기부자 정보 관리에 부실해 NGO 설립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 적십자사의 재산을 사실상 몰수해 보건부 산하에 새로 설치되는 새로운 적십자사로 귀속시켰다.

적십자사는 2018년 4월 정부의 사회보장기금(INSS) 개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을 당시 유혈 진압으로 부상당한 시민들을 치료하며 인도주의 활동을 펼쳤다. 정부의 압력으로 공공병원이 시위대 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에 적십자사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시위 진압 과정에서 448명이 사망하고 2830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니카라과 정부는 시위 이후 반정부 인사와 정부에 비판적인 비정부기구들을 광범위하게 탄압해왔다. 지금까지 3000개 이상의 시민단체와 비정부기구들이 폐쇄되거나 법적 지위를 박탈당했다. 이들 단체 중 다수가 의료 및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헤왔기 때문에 현재 34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원 부족으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적십자사까지 폐쇄되면서 원주민 공동체 지원, 폭력 예방, 식량 지원, 가뭄 문제, 질병 연구·예방·진단 및 치료 등에 기여하는 12개 이상의 적십자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공중 보건 전문가 아나 퀴로스는 엘파이스에 “이는 니카라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완전히 통제하려는 또 다른 시도”라며 “적십자사가 정부 기관으로 바뀌면 비정치적, 독립적, 비차별적이어야 하는 역할을 더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1985년 처음 대통령에 취임한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5년의 임기를 마친 후 물러났다가 2007년 재선 뒤 개헌으로 연임 제한을 없애고 장기 집권하고 있다. 오르테가 대통령의 부인인 로사리오 무리요도 부통령을 맡고 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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