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말투로 때아닌 여름을 불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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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문학 동아리에서 그 애를 처음 만났다.
졸업하고 몇 년 동안은 그 애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 애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 근처에서 동창 모임을 하거나 가끔 경기도 안양에 들를 때 그 애와 만났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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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문학 동아리에서 그 애를 처음 만났다. 두 학년 아래였다. 신입 회원 가운데 유독 명랑한 친구였다. 봄꽃처럼 웃으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한 달에 한 번쯤 동아리방에 모여 선배 회원이 후배 회원의 작품을 합평해줬다. 나름 유서 깊은 동아리였다. 되돌아보면 도제식 교육을 흉내만 냈다. 자기도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며 주워들은 것을 늘어놓았다. 어렴풋이 그때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왠지 동아리방은 어두컴컴했다. 창문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잠깐 비쳤다.
졸업하고 몇 년 동안은 그 애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보통 후배들은 대학 입시에 관해 물었다. 그 애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 근처에서 동창 모임을 하거나 가끔 경기도 안양에 들를 때 그 애와 만났을지도 모른다. 붙임성이 좋은 애였다. 종종 친구들한테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 애는 시를 썼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선 과 학생들이 으레 시나 소설을 썼다. 대학에 진학하고 글쓰기를 그만두는 친구가 많았다.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이 세상에는 글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 그런데도 그 애는 계속 시를 썼다. 이따금 시를 보여줬다. 그러다 연락이 끊겼다. 기억이 뒤죽박죽돼 느낌만 남아 있다.
내가 서른이 되던 해, 그 애의 부고를 접했다.
나는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저 끝에 빛이 있었다. 추돌 사고가 난 차들을 피해 서행했다.
그전에도 또래들의 부고가 있었다. 어울려 다니던 친구가 갑자기 떠났을 때 나는 그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은 자는 살아남은 자의 기억에서 살아난다.
그 애가 떠나고 뒤늦게 그 애가 남긴 시들을 찾아 읽었다. 시 한 편이 생각난다. 꽁치잡이를 하는 아버지 이야기였다. 어디까지가 경험한 것이고 어디부터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시에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팔딱팔딱 뛰는 꽁치들을 실은 배만 항구에 닿는다.
아이묭(Aimyon)의 첫 정규 앨범 《청춘의 익사이트먼트》(靑春のエキサイトメント)에 수록된 <살아 있었구나>(生きていたんだよな)는 “바람 되어 아득히 멀리 희망을 끌어안고 날았던” 이를 노래한다. 그는 묻는다.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하는 때 사라지고 싶어지는 걸까?”
청춘이란 말은 젊은 시절을 지난 이가 그때를 회상하며 이름 붙인 날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간절히 바랐다. ‘그래도 살자’는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나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 너를 끌어안고 때가 올 거라고, 분명 올 거라고 되뇌었다. 그 지난한 여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지나치고 놓치며 포기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삶이 있다고.
시인 이용악의 말을 빌려 ‘두어 마디 너의 말투로 때아닌 여름을 불러줄게’ 하고 고백하는 새벽, <표백>(漂白)을 조용히 따라 부른다. “사람은 반드시 후회하게 돼. 그러면서도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해.”
‘시란 무엇인가’ 질문하는 내게 한 선배는 ‘어떤 것이 시가 될 수 있을까’ 물으라고 했다. 그 말이 ‘삶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떤 것이 삶이 될 수 있을까’ 묻는 태도처럼 들렸다.
무엇이든 삶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최지인 시인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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