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 전북의 위기는 기회, 수원의 위기는 위기
[골닷컴, 수원]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도 있다. 두 이야기는 공통점이 있다. 난세와 위기는 없는 편이 훨씬 낫다.
5월 10일 수요일 저녁 수원과 전북이 만났다. 한 동료는 이 경기를 ‘멸망전’으로 정의했다. 필자는 동의하지 않았다. 올 시즌 다른 곳에서 이미 ‘멸망전’이 있었다. 그리고 두 팀의 과거를 생각하면 2023시즌 초반은 이미 망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 수원과 전북의 상태는 딱 박정민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짜증을 내는 그 박정민 말이다.
수원은 김병수 감독을 새로 영입했다. 구단은 그가 ‘김기동이나 이정효 같은 감독’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누가 위기 아니랄까 봐서 신임 감독은 출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부상자가 많고 팀 분위기는 처진 상태다. 하필 데뷔전 상대가 전북이다. 한창 잘 나가는 전북은 곤란하고, 위기에 빠진 전북은 더 곤란한 팀이다.
사전 기자회견에서 김병수 감독이 받은 대망의 첫 질문은 동료의 토토 사이트 논란이었다. 김 감독은 상황을 정확히 모른다면서 “오늘 경기에 관한 질문을 부탁한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한 기자가 ‘오늘 경기’에 출전하는 김태환을 묻자 그는 “나중에 말씀드리겠다”라며 다시 막아냈다. 기자회견 철통방어와 달리 그의 팀 수비는 킥오프 21초 만에 무너졌다.
매를 먼저 맞아본 사람답게 김두현 감독대행은 차분해 보였다. 난리가 난 곳은 전북의 출전명단이었다. 중앙 미드필더와 센터백이 풀백 포지션을 채웠다. 센터백 박진섭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갔다. 전임 감독이 떠나자 출전명단에 복귀한 문선민이 경기 시작 21초에 골네트를 흔들었다. 지난주 서울전 구스타보의 선제골 소요 시간은 시작 11초였다. 슈퍼매치라면서 오랜 세월 서로 으르렁거린 두 팀이 사이좋게 전북에 비슷하게 당한 것이다. 원수는 닮는다는 말이 사실일지 모른다.
이날의 주인공은 백승호였다. 지금까지와 달리 백승호는 상대 최후방 라인 가까이 전진한 위치에서 패스를 받았다. 그리곤 전후반 각각 한 골씩 터트렸다. 시즌 1, 2호 골이었다. 그라운드 어디서나 전북은 경기를 유리하게 운영했다. 김두현 감독대행은 “선수들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있으면 얼마든지 볼이 순환되는 게 축구”라고 설명했다. 백승호는 “일주일 내내 상대가 끌려 나오게 유도하자고 준비했는데 상대가 잘 끌려 나와줬다”라고 밝혔다. 시즌 첫 3득점 경기는 전북이 준비를 잘 했다는 증거다. 김두현 대행체제가 위기를 리프레시 기회로 활용한 셈이다.
김병수 감독이 경기 전에 “나쁜 선택이 아니길 바란다”라는 뮬리치와 김태환은 일찌감치 ‘나쁜 선택’으로 드러났다. 불투이스는 허망하게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았다. 그 시점부터 경기 종료까지 30분이란 시간은 수원을 천천히,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처럼 보였다. 후반 추가시간의 VAR 판독은 더 심한 고통(0-3과 0-4의 갈림길)이었다. 전북 팬들은 정동식 주심을 향해 “킴! 킴! 킴!”을 연호했다. 정동식 주심은 지나치게 긴 시간을 소비한 끝에 ‘노골’을 선언했다. 맘마미아.
홈 팬들은 골을 먹을수록 응원 목청을 더 높였다. 경기 전, 김병수 감독은 “비난은 나 혼자. 팬들은 선수 응원을 끝까지 열렬히”라고 당부했는데 파란색 팬들이 화답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홈 서포터즈의 지지와 선수들의 경기력은 아쉽게도 다른 쪽을 향했다. 전북과 달리 수원의 감독 해임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경기 후, 김병수 감독은 질문 세례에 “죄송하다. 지금 내가 많이 힘들다”라면서 재차 답변을 피했다. 그는 정말 힘들어 보였다. 분위기를 끌어 올릴 ‘새로운 에너지’가 한 경기 만에 처진 공기에 휘말린 것 같아 안타까웠다.
전북은 서울과 수원이라는, 원래 까다로워야 할 2연속 원정에서 승점 4점을 획득했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이날 결과를 반영해도 전북의 승점(14점)은 울산(31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대행이 아니라 코치”라고 주장하는 김두현 체제에서 전북은 작은 빛을 발견했다. 문선민이 펄펄 날고, 백승호가 한 경기에서 두 골이나 터트렸다. 이수빈도 출전이 계속되면서 여유를 찾는 중이다. ‘답정외국인감독’이 현실이라서 김두현 감독대행의 전술 구사가 더 돋보인다.
머나먼 곳에서 박지성 디렉터는 외국인 감독을 찾는 중이라고 한다. 지난 주말부터 전북이 실제로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한국 축구 레전드가 직접 점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처럼 보인다. 혹시 아는가? 난세의 영웅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
글, 그림 = 홍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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