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칫거리라던 가상자산에 영향력 확대하려는 한은…“금융안정 해칠 위험 있다”

이재은 기자 2023. 5. 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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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보호’ 초점 맞춘 가상자산법
지난달 국회 첫 문턱 넘어
금융위 반대에도 한은 자료제출권 획득
한은 “스테이블코인 규제 권한도 가져야”
“한국 성인 중 16%가 가상자산(암호화폐) 계좌를 갖고 있다. 이는 나의 골칫거리 중 하나다.”

이창용 한국은행은 총재는 지난 3월 국제결제은행(BIS)이 스위스 바젤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한국은 비트코인 거래 비중이 세 번째로 큰 나라이며 가상통화 거래의 50% 이상이 한국 원화로 이뤄진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국가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 추진 경험과 앞으로의 계획’을 주제로 한 고위급 토론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 총재는 이런 상황을 ‘골칫거리’라고 표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으나, 가상자산 시장이 커질수록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한국은행은 가상자산이 지급수단으로 널리 사용될 경우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를 일부 대체하면서 통화주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한국은행 제공) 2023.5.4/뉴스1

이에 한국은행은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추진해온 가상자산 보호법 입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가상자산이 장기적으로 통화정책 효과를 저해할 수 있는 만큼, 가상자산 규제에 있어 한국은행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 국회 문턱 넘은 가상자산법…한국은행에 자료제출 요구권 부여

11일 국회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를 골자로 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 보호법)’이 지난달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그동안 국회에 발의된 가상자산 관련 법안 19건을 통합·조정한 것이다. 가상자산 보호법이 국회 첫 문턱을 넘으면서 그동안 무법지대였던 가상자산 시장 규제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테라·루나 사태로 가상자산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면서 가상자산 시장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법안은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로 정의했다. CBDC는 가상자산에서 제외했다. 가상자산은 법화(화폐)가 아닌 반면,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화이기 때문에 가상자산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 한국은행에 가상자산 사업자와 발행인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통화·금융안정 정책 수립에 필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가 지난 2017년부터 챙긴 거래 수수료가 무려 4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업비트 사옥의 모습. /뉴스1

앞서 가상자산 규제를 주도해온 금융당국은 CBDC를 가상자산에서 제외하는 것과 한국은행에 자료제출 요구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반대해왔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CBDC가 가상자산법 적용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되지 않으면 CBDC도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데다, 가상자산이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하자 국회가 한국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금융위가 한 발 양보하면서 법안이 소위를 통과했다.

이번 법안은 정무위 전체 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예정이다. 정치권과 업계에서는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법안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코인런 발생시 금융안정 위협…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 감독권 가져야”

나아가 한국은행은 지급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스테이블코인이 화폐를 일부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감독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스테이블코인이란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이 총재는 지난 3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서 중앙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감독하고 있다”면서 한국은행도 조사·감독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발간한 ‘지급결제보고서’에서도 EU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별도의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의 경우 스테이블코인이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금융안정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하면 ECB가 인가를 거부하거나 인가 취소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암호자산시장 법률안 제정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bank run·대량 예금인출) 여파로 파산한 것처럼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가 부실해지면 코인런(coin run·암호화폐 대량 인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금융시장까지 위험이 전이되면서 금융안정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해외 주요국의 대응 입법 추세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도 중앙은행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감시 권한을 법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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