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과학자를 ‘애로배우’로 만드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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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내 공과대학 교수들과 만난 자리였다.
한 교수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요즘 공대 교수들은 애로배우가 되고 있다"는 말을 꺼냈다.
그런데 왜 '애로배우'라는 민망한 표현을 붙인 걸까.
그런데 태양광에 대한 정부 R&D가 대폭 삭감되면서 페로브스카이트를 연구하던 과학자들마저 '먹고살기 위해' 전문 분야를 버리고 배터리나 우주, 원전 같이 윤석열 정부가 지목한 분야로 향하는 처지니 '애로배우가 되고 있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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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내 공과대학 교수들과 만난 자리였다. 한 교수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요즘 공대 교수들은 애로배우가 되고 있다”는 말을 꺼냈다. 뜬금없이 나온 낯 뜨거운 표현에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애로배우’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 정부 연구개발(R&D) 과제가 집중된 과학 분야를 일컫는 말이다. AI(인공지능), 로봇, 배터리, 우주의 앞 글자를 하나씩 따서 ‘애로배우’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것이다. AI나 로봇, 배터리, 우주 모두 대한민국이 미래를 위해 R&D에 힘써야 할 분야가 맞다. 그런데 왜 ‘애로배우’라는 민망한 표현을 붙인 걸까.
공대 교수들은 쏠림 현상이 너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가 육성하지 않는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들은 R&D 과제 하나 따기가 힘들 정도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태양광이다. 문재인 정부 때 태양광 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마구잡이로 진행된 건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하지만 미래 기술인 페로브스카이트 태양광 같은 분야에 대한 연구마저 지원을 줄이면서 관련 연구자들은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R&D 과제를 따기 위해 열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분야다. 과학 부문 노벨상이 한국에서 나온다면 페로브스카이트 연구자 중 한 명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태양광에 대한 정부 R&D가 대폭 삭감되면서 페로브스카이트를 연구하던 과학자들마저 ‘먹고살기 위해’ 전문 분야를 버리고 배터리나 우주, 원전 같이 윤석열 정부가 지목한 분야로 향하는 처지니 ‘애로배우가 되고 있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는 것이다.
과학은 과학대로 놔둬야 가장 좋다. 정치가 과학에 파고드는 것이야말로 과학을 망치는 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과학기술계 곳곳에 정치 논리가 침투하는 모습이 보인다.
며칠 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신임 원장에 연구원 내부 출신이 아닌 양성광 전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이 선임됐다. 맞는 후보가 없다며 1년이나 원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더니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에서 과학기술비서관을 3년 가까이 지낸 인물을 앉혔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이면 몰라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원장을 공무원 출신이 맡는 건 많이 어색한 풍경이다. 다른 출연연 원장 선임 과정에도 정치권의 입김이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을 우선순위에 두고 정책을 펼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치가 과학에 우선한다면 과학기술의 최대 가치인 수월성은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조만간 대통령실에서 과학기술계 원로들을 모아 과학기술 정책 방향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고 한다. 원로들까지 불러모을 일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장에 정치를 빼기만 하면 될 일이다.
[이종현 과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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