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핵심기술 아는 연구원이 경쟁사로 간다면…
"최근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원들의 이직이 잦아졌어요. 우리 핵심 기술을 가지고 이직하진 않을까 늘 걱정입니다. 저와 남아 있는 직원들의 밥줄이 걸린 문제인데요…"
최근 만난 바이오기업의 A대표는 근심가득한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했다. 그 회사엔 직원 50명 정도가 일하고 있는데 그의 말대로 핵심기술이 유출되면 경우엔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기술을 지키면 됩니다."
우리 회사 위즈노트는 기업들의 기술을 보호하고 유출을 방지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스스로 기술을 지키기 버거운 중견기업들의 창업자나 경영인을 많이 만난다. 놀랍게도 그들의 걱정거리는 A대표와 똑같다. "직원이 이직하면 우리 기술은 어떻게 됩니까?"
그럴때마다 그들에게 "그 기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이 질문에 대한 시원스러운 대답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바이오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신약, 의료기기 등 다양한 사업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개발이 이뤄졌다. 개별 기업별로 혁신적인 기술들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영업비밀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기술의 진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바이오기업이 개발하는 생명공학, 유전자 조작, 항암치료제 등 다양한 기술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 결과물이다. 이 기술은 일부 공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외부에 비공개된 영업비밀'의 상태로 가지고 있다. 이 기술을 누군가가 무단으로 탈취하면 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하지만 기업들은 대부분 설마하는 마음으로 이 기술을 보호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지난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자료에 따르면 기술유출의 93%는 임직원 등 내부인에 의한 것이었다.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기술유출 10건중 7건이 기업 내부자에의해 외부로 유출됐다. 또 기술정보를 외부로 유출시킨 관계자는 전직직원이 69.3%, 현직직원이 14.8%란 조사결과도 있다.
전현직 직원에 의한 기술유출이 대부분인데 바이오기업들의 대처는 한가하기만하다. 최근 컨설팅을 해준 한 업체에 대한 실사를 했는데 연구원들이 중요기술과 관련된 수만건의 자료를 개인 클라우드와 외장하드에 저장하고 있었다. 일부는 PC용 메신저로 자료를 외부에 내보내기도 했다. 이 경우 언제라도 기술이 유출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과거 특허청 자료(2013)를 보면 영업비밀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중견/중소기업들은 ? 관련법을 잘 모르거나(27.6%) ? 전문인력 부족(20.1%) ?영업 비밀 관리방법을 잘 모른다(19.6%)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10년전 조사결과지만 영업비밀보호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는 필자의 느낌에는 2023년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은 자체 조직과 인력을 운영해서 기술을 보호하고 있지만, 중소·중견 바이오 기업에서는 전담직원을 배치하는 것도 인건비 문제 등으로 어렵고 전문인력을 시장에서 찾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최근 클라우드, 협업툴 등 생산성 도구로 인해 기술유출의 위협은 계속 증가하는데 어떻게 통제해야 기술유출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그렇면 어떻게 해야할까?
회사의 핵심기술을 영업비밀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내부통제수단과 보안제도 등 법으로 보호받기 위한 필수조치들이 충족돼야 한다. 이 또한 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회사의 업무방식과 생산성을 고려한 인적, 물적, 제도적 보안정책을 맞춤형으로 수립해야하고 직원들에게 상시 교육도 해야한다. 정기적인 보안감사도 필수다. 보안 취약점을 파악하고 비효율적인 보안정책 등을 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며 특허청 유관기관이나 기업보안컨설팅 회사의 컨설팅 등을 통해 정보유출의 길목이 어디인지 파악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제도적, 기술적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K-바이오 기술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그렇게 거창한 이유까지는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우리의 중견·중소 바이오기업을 일군 기업 대표의 전부가 담긴 인생과, 가족들의 편안한 일상을 책임지고 있는 수많은 우리 직원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제는 해야 할 때다. 더 이상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경운 위즈노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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