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생 스포 3대장, 이제는 역사속으로…
올시즌 프로농구는 그 어느 시즌보다도 흥미로웠다는 평가다. 막강한 전력을 갖춘 안양 KGC가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가운데 전성현이 역대급 3점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문경은, 조성원 등 과거 전설들을 소환했으며 후반에는 김선형의 쇼타임이 빛났다. 특히 플레이오프들어 수많은 명경기가 연출되며 많은 팬들을 열광시켰다.
고양 캐롯(데이원)은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4강에 진출하며 뜨거운 박수를 받았고 '감동캐롯'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 가운데 (작은)이정현은 리그를 이끌 차세대 슈퍼스타임을 입증하는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줬다. 비록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아쉽게 분패하기는 했으나 SK저력 역시 놀라웠다. 객관적 전력상 KGC의 손쉬운 우승이 예상됐지만 김선형-자밀 워니의 원투펀치에 전희철 감독의 지도력이 더해져 마지막 순간까지도 승자를 예상하기 힘든 명시리즈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시즌 종료후에는 오랜 시간동안 리그에서 활약해온 베테랑 포워드 셋이 나란히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또다시 한 시대가 저물게 됐다. 안양 KGC 양희종(38‧194cm), 수원 KT 김영환(38‧195cm), DB 윤호영(38‧195.6cm)이 바로 그들이다. 양희종과 김영환은 2007년 드래프트 동기이며 윤호영은 학번으로는 한해 밑이지만 셋 모두 1984년생으로 나이가 같다.
플레이 스타일은 다르지만 주 포지션 또한 셋 모두 3번이다. 굵직한 커리어를 남기고 나이, 포지션까지 같은 인물 셋이 동시에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는 케이스는 찾아보기 쉽지않다는 점에서 이들의 은퇴가 더욱 화제가 되는 모습이다. 셋은 꽤 오래전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해군 3대장’에 빗대 ‘스포 삼대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군 삼대장은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나오는 세계 정부 최고전력인 해군본부 소속 3명의 대장을 가리킨다. 아오키지, 키자루, 아카이누는 각각의 색깔에 더해 엄청난 전투력까지 갖추고있는지라 작품속 쟁쟁한 해적들도 두려워하는 강자들로 표현된다. 양희종은 '붉은 개(赤犬)' 아카이누와 흡사하다.
어떤 상대든 마음만 먹으면 꽁꽁 묶어버렸던 강력한 수비력을 감안했을때 얼음 능력을 통해 움직임에 장애를 주는 아오키지가 연상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후에 원수로 진급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상 삼대장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는 점과 코트 위에서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며 뜨거운 피를 뿜어냈다는 부분에서 아카이누와 공통점이 더 많아보인다.
양희종은 셋중에 득점, 어시스트에서 가장 밀린다. 수비전문으로 이름높았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기록조차 의외로 많아보인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누구도 양희종을 윤호영, 김영환보다 아래로 놓지는 않는다. 수비, 리더십 등 눈에 보이지않는 부분에서의 공헌도가 엄청났으며 플레이오프 등 큰 경기에서는 에이스로 빙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팀의 통산 4회 우승에 모두 함께했다는 점은 공격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역대 최고의 스몰포워드중 한명으로 평가받게하는데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 양희종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618경기 출전 평균 6득점, 3.7리바운드, 1어시스트, 0.6스틸, 0.6블록슛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14년 1월 23일 울산모비스전 = 28득점 / 어시스트 ☞ 2019년 1월 29일 전주 KCC전 = 8개 / 스틸 ☞ 2015년 11월 10일 전주KCC전 = 6개 / 블록슛 ☞ 2018년 11월 15일 원주 DB전 = 5개
대학과 프로 초년병 시절 크고작은 부상으로 고생했던 김영환이 600경기를 훌쩍 넘게뛰며 롱런의 아이콘이 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출중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1라운드 후반까지 지명순위가 밀렸던 배경에도 부상우려가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꾸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나이를 먹을수록 플레이가 무르익는 모습을 보였고 큰 경기에서도 종종 임팩트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2017년 2월 24일 친정팀 창원 LG와의 원정경기에서 2.4초를 남기고 상대의 더블팀 사이에서 던진 '더블클러치 스카이 3점 훅슛' 버저비터는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 버저비터를 다툴 정도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김영환은 3대장중 공격능력이 유독 빛나는 '노란원숭이(黄猿)' 키자루를 닮아있다. 번쩍번쩍열매를 먹은 키자루는 평소에는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 다니지만 싸움에 임하게되면 엄청난 집중력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빠른 스피드를 살린 발차기와 조금의 빈틈도 놓치지않는 손가락끝 레이저 앞에 어지간한 상대들은 도망조차 가지못한다. 김영환 또한 그랬다. 이른바 그의 손끝이 뜨거워지는 날은 던지는 슛마다 코트를 가르고 수비진을 넘어서 림을 폭격했다.
◆ 김영환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665경기 출전 평균 8.9득점, 2.8리바운드, 2어시스트, 0.7스틸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12년 10월 13일 울산 모비스전 = 31득점 / 3점슛 성공 ☞2020년 1월 29일 서울 삼성전 = 6개 / 어시스트 ☞ 2016년 11월 30일 안양 KGC전 = 11개 /스틸 ☞ 2012년 10월 17일 고양 오리온전 = 5개
원주 팬들에게 윤호영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주성 이후 프랜차이즈 스타 계보를 잇는 선수로 김주성 현 DB 감독, 로드 벤슨과 함께 '원주 산성'을 구축해 높이의 팀컬러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한축으로 활약했다. 2011~12시즌에는 정규시즌 MVP까지 거머쥐었다. 여러차례 파이널에 진출했음에도 우승을 차지하지못한 부분은 못내 아쉽지만 그가 있었기에 DB가 명가의 위상을 지켜나갔던 것도 사실이다.
양희종이 수비, 김영환이 공격에 특화되어있다면 윤호영은 셋중에서 공수 밸런스가 가장 좋았다. 210cm에 달하는 윙스팬에 운동능력과 센스가 좋았던지라 공수에서 보여주는 안정성이 높았다. KGC와의 챔피언결정전 당시 양희종과 벌였던 장외 신경전은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코트 위에서의 윤호영은 다소 신경질적이고 냉랭한 모습도 자주 보였다. 여기에는 낯을 가리고 내성적인 성격도 영향을 끼쳤다고하는데 그에 반해 선배 조성민에게 경기중 신경전을 벌이며 박치기로 선빵을 날릴 정도로 끓어오르는 피를 보여주기도 했다. 차가우면서도 뜨겁고, 뜨거운것 같으면서도 차가운 남자였다. 이는 엉뚱하면서도 진지하고, 털털하면서도 치밀한 '푸른 꿩(青雉)' 아오키지와도 비슷하다.
◆ 윤호영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516경기 출전 평균 7.8득점, 4.4리바운드, 2.2어시스트, 0.9스틸, 0.9블록슛
⁕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11년 1월 20일 창원 LG전 = 29득점 / 어시스트 ☞ 2019년 2월 28일 부산 KT전 = 9개 / 스틸 ☞ 2011년 2월 17일 대구 오리온스전 = 5개 / 블록슛 ☞ 2011년 11월 22일 인천 전자랜드전 = 6개
각 구단은 오랜 시간동안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준 이들에게 거기에 걸맞는 대우를 할 예정이다. '안양의 심장'으로 불렸던 양희종은 시즌중 일찌감치 은퇴 여부를 밝혔다. 이에 구단에서도 '라스트 디펜스'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노장의 마지막 시즌을 각별히 신경써줬다. 동료들도 우승이라는 결과물로 화답했다. 영원한 안양맨 양희종은 다음 시즌부터는 코치로 합류할 예정이다.
윤호영같은 경우 일단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팀내 상징성 등을 감안했을때 추후 코칭스탭으로의 합류가 유력한데 지도자 연수과정이 얼마나 걸리느냐에 따라 그 시기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환 역시 양희종과 마찬가지로 다음시즌부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계획이다. 양희종, 윤호영과 달리 원클럽맨은 아니지만 프로생활을 시작한팀으로 돌아와 은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KT와 좋은 인연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농구카툰 크블매니아(최감자 그림/케이비리포트 제작), 백승철 기자,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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