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 길에서 통일을 생각하다

2023. 5. 1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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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어엿한 신도시의 이미지가 물씬 풍기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주에 산다고 하면 반응은 거의 두 가지로 나눠졌다. ‘멀다’와 ‘북한’. 내가 파주를 떠나 있는 몇 년 사이 파주는 문화와 관광, 평화 도시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해가고 있었다.

마침 ‘DMZ 평화의 길 테마노선’(https://www.durunubi.kr/dmz-main.do)이 지난 4월 21일부터 전면 개방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DMZ 평화의 길 테마노선은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통일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환경부가 협력하여 만든 비무장지대(DMZ) 접경 지역 인근을 둘러볼 수 있는 특별한 코스다. 

내가 참가한 파주뿐만 아니라 DMZ를 접하고 있는 10개 접경 지자체(강화, 김포, 고양, 파주, 연천,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별 차별화된 11개 테마노선으로 구성됐다. 파주 코스는 임진각과 DMZ 생태탐방로, 통일대교, 도라전망대 및 통문을 둘러보는 것으로 구성됐다. 

임진각 내 한반도생태평화 종합관광센터에서 투어 시작~

파주 구간의 출발점이자 민간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끝 지점인 임진각은 평화누리공원과 전망대, 전시실 등이 있는 안보관광시설이다. 임진강 건너편은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지역으로 군이 발급한 통행증이 있어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DMZ 평화의 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임진각 내 한반도생태평화 종합관광센터에서 집결한 투어 신청자들은 차를 타고 임진각 바로 옆에 있는 DMZ 생태탐방로로 이동하였다. 걸어서도 단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 아주 가까운 곳이지만 철통같은 보안은 이곳이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통제구역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해주었다. 

한 명 한 명 이름과 신분증, 사진과 얼굴을 모두 확인한 후에야 드디어 민통선 내에 있는 DMZ 생태탐방로에 들어갈 수 있었다. DMZ 생태탐방로는 9.1km의 긴 길이지만, 평화의 길 투어 중에는 임진각 시작점에서 통일대교까지 1.4km의 길만 걷는다. 특별한 체험에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대고 싶었지만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도라전망대 도착.

춥지도 덥지도 않은 걷기 딱 좋은 날씨.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통일대교까지 걸었다. 통일대교는 1998년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소떼 방북’이 이루어졌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방북 하루 전날 개통된 이 통일대교를 지나 소를 몰고 방북한 정주영 회장은 분단 이후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 땅을 밟은 첫 번째 민간인이 되었다.

25년이 지난 2023년에 노란 투어버스를 타고 그 통일대교를 달리는 기분은 남달랐다. 그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은 다음 목적지인 도라전망대를 가는 길에도 이어졌다. 버스는 남방한계선을 지나 도라전망대로 들어갔다. 남방한계선을 알리는 파란 선이 바닥에 붙어 있었다. 이제 진짜 비무장지대에 들어온 것이다. 옆에는 남북출입사무소도 있었다. 전부 다 말로만 듣던, 혹은 뉴스에서만 보던 것들이 실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도라전망대에 있는 지뢰 경고판이 위험 지역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도라전망대에는 ‘DMZ 평화의 길’ 참가자뿐만 아니라 따로 투어를 신청해서 온 관광객들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육안으로 북한이 보인다. 인공기와 개성공단을 목도하니 정말 비무장지대에 입성한 것이 실감 났다. 눈앞에 북한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더 놀라운 점은 외국인이 반이었다는 것. 심지어 나라도 인종도 각양각색. 외국인들이 DMZ 투어에 정말 관심이 많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남방한계선 안에 들어와 있다.

파주 코스의 마지막 목적지는 통문이다. 이 통문이 바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관광객은 통문까지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문을 넘으면 진짜 비무장지대로 들어간다. 2km만 지나면 군사분계선, 또 거기서 다시 2km를 가면 북한 땅이 나온다. 

통문을 넘어가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장단면사무소가 있다고 한다. 한국전쟁 전까지 장단면의 행정을 담당하던 면사무소로 한국전쟁 때 새겨진 총탄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가이드가 보여주는 사진으로 대신하였다. 통문에서도 역시 삼엄한 신분 확인이 이어졌고 반드시 가이드의 동선을 따라 같이 움직여야 했다.

저 멀리 보이는 개성공단.

출발 지점인 임진각에 돌아오는 것으로 2시간에 걸친 투어는 끝이 났다.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아 임진각에 전시되어 있는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을 보러 갔다. 마찬가지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화통은 한국전쟁 중에 피폭, 탈선된 후 비무장지대에 방치됐던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처리된 후 이곳에 전시되고 있었다. 비록 장단면사무소에는 갈 수 없었지만 화통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으로 동족상잔의 역사를 목격할 수 있었다.

임진각에 전시되어 있는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총탄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기차에 박힌 총탄 자국 위에, 사진으로 남은 70년 전 젊은 청춘들과 지금도 여전히 밤낮없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의 결연한 눈빛 위에, 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간 수백만의 영혼 위에 세워진 우리의 자유는 당연한 게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DMZ 평화의 길’을 꼭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나면, 일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정수민 amantedepari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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