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평범한 심리상담소 [내책 톺아보기]

파이낸셜뉴스 2023. 5. 1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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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평범한 심리상담소 [내책 톺아보기]

[파이낸셜뉴스] 매년 우울증이나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고 있다. 심하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렇게나 괴로운데 도대체 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걸까? 바로 ‘그깟 일’이라는 위험한 생각 때문이다. 우리가 ‘그깟’ 정도로 규정해 버린 마음의 병증들은 대비할 시간도 없이 우리의 삶을 흔들고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어 버린다.

정신과를 찾을 즈음이면 이미 정신질환자로 낙인이 찍힌 듯 사회적 시선은 냉랭해져 간다. 그뿐인가. 정신과에서 상담받았다는 진료기록만으로도 당연하게 보험 가입조차 거부당하곤 한다. 마음의 병은 현실의 나에게 문제만 안겨주는 골칫덩이인 셈이다.

상담소에 찾아가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푸는 일은 여러모로 부담이다. 한마디로 용기를 수반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어떤 아픔이라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정답 같은 것은 없다. 그렇게 아프기까지 수없이 많은 상처와 좌절이 켜켜이 쌓여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떻게 몇 번, 몇 달 만에 아무것도 없었던 일처럼 만들 수 있겠는가? 다만 상처가 이해되고, 나 자신이 좀 더 이해될 때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상담이라는 치료 과정에서 새로운 희망을 얻고 한 발짝, 두 발짝 내딛는 것이다. 지독하게 고독하기도, 고통스럽기도 한 여정을 상담사는 내담자와 함께 걷는다. 그렇게 살아내고 인고한 시간이 자신의 아픔에 대한 정답이 된다.

‘이상한 나라의 평범한 심리상담소’는 구체적인 사례와 사연을 바탕으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마음의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이는 독자가 각각의 사연에 자신을 대입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고 실질적인 조언과 위로를 얻게 하기 위함이다.

책은 내가 첫 교단에서 첫 수업을 하는 시점부터 시작해 사례자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 그리고 통찰까지 전부 담았다. 책 그리고 나의 상담은 언제나 추구하는 것은 상담자가 자신의 가치를 찾고 삶의 희망을 얻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행된다.

얼마 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사실 누구나 지난 기회의 아쉬움과 후회스러운 순간을 해결하기 위해 상상의 시간은 가지곤 한다. 상담 사례자들의 대부분 역시도 마찬가지다. “딱 몇 년 전으로만”이라는 간절함이 어느새 박탈감으로 드러나기까지 할 정도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현재의 인생은 참으로 보잘것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부정적이고 실패했던 기억에 맞춰 지금의 삶을 해석하고 비관하기에 이른다.

이런 경우 우리는 다시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풍부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하고 싶은 걸 해봐야 한다. 아주 단순한 것부터. 조금 더디더라도 조금씩 해내는 나의 속도를 사랑해야 한다. 둘째, 반복하고 계속 해야 한다. 셋째, 꾸준히 반복하고 계속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본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건 무슨 뜻일까?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고 선망할 뿐 숨겨진 이면의 이야기에는 잘 집중하지 못한다. 내가 동경하는 인물의 삶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귀를 기울이며 보면 다른 면이 보인다. 투병, 이혼 등 삶의 굴곡이 인터뷰 기사에서는 짧게 몇 줄로 나오지만, 그 짧은 글 속에 그분의 삶이 담겨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감동이 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

힘든 순간에 문득 떠올라 힘이 되기도 한다. 무작정 선망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귀를 기울이면 나와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초라하다고,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이야기 속엔 성공 신화에선 볼 수 없는 무수한 한숨과 낙심,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기적이 담겨 있다.

어떤 삶도 그저 그런 삶은 없고, 이야기가 없는 삶은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고유하고 소중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에 감동하듯 소중한 나만의 이야기에 감동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순간, 나만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들, 하찮은 천 쪼가리처럼 여겼던 기억을 모아 나만의 이야기로 엮어보자. 어려움, 비참했던 기억, 내 마음을 찢어놓았던 어떤 말도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런 건 그냥 과거의 일이고 한때 처한 상황일 뿐이라고 여기게 될지 모른다.

나라는 존재는 그런 수많은 것을 겪어내고 살아낸 사람이다. 살아내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초라하다고, 망했다고 생각하는 삶의 순간이 있다면 하나둘 다시 엮어보기를 바란다. 손녀가 잘못 잘랐다고 버린 천 조각을 할머니가 다시 주워서 멋진 퀼트 이불을 만들듯이, 조각난 시간을 자신의 바느질로 엮어서 나만의 무늬로 표현해보자.

이원이 한양대 상담심리대학원 겸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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