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수장 프리고진, 푸틴 겨냥 폭언?…러 내분 가시화하나
"푸틴 최측근이던 프리고진, 야망 키우다 눈 밖에 난 듯"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겨냥한 비난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전날 공개한 영상에서 "한 행복한 할아버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할아버지'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은 채 "그가 옳다면 신이 모두를 축복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할아버지가 완전히 얼간이(asshole)라는 게 드러난다면"이라며 독설을 이어갔다.
프리고진은 이번 전쟁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에서 바그너그룹 소속 용병들이 탄약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할아버지'가 러시아를 재앙으로 이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영상은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 열병식을 참관한 직후 공개됐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전승절 행사로 바빠서 프리고진의 발언을 보지 못했다며 논평하지 않았다.
서방진영과 러시아내 반(反) 푸틴 성향 분석가들은 프리고진이 말한 '할아버지'가 푸틴 대통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반정부 인사인 올가 로마노바는 푸틴 대통령이 정부 비판자들 사이에선 '벙커의 할아버지'로 불린다고 짚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동유럽·구소련 탈공산주의 변혁을 연구하는 블라드 바흐넨코도 미국 시사지 뉴스위크에 "할아버지는 분명 푸틴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다만, 프리고진은 할아버지의 정체를 묻는 언론의 질문에 "국방차관에서 해임된 뒤 바그너그룹에 합류한 미하일 미진체프, 우리에게 포탄을 공급해야 하는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소셜미디어에서 우리에게 포탄 상자를 제공한 나탈리야 힘 등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은 그동안 러시아 고위 관리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을 자주 쏟아냈으나 푸틴 대통령을 겨냥해 공격적인 발언을 한 적은 없었다.
그는 지난 5일 영상에서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군 총참모장을 "인간 말종들"이라고 부르면서 바그너그룹에 충분한 탄약을 제공하지 않은 죄로 "지옥에서 불에 탈 것"이라는 욕설을 퍼붓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바흐무트에서 철수하겠다고 위협했고, 이틀 뒤엔 러시아 군당국으로부터 탄약 보급을 확약받았다며 바흐무트에서 계속 싸우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프리고진은 크렘린궁에 음식을 공급하는 업체를 운영해 '푸틴의 요리사'로 불린 푸틴의 최측근이었다.
그러나 바그너그룹을 이끌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이후 러시아 정부와 군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뉴스위크는 이번 '할아버지' 발언으로 프리고진과 푸틴의 관계가 한계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 센터의 선임연구원이자 정치분석회사 R. 폴리티크의 창립자인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최근 프리고진이 공개한 영상들로 미뤄볼 때 프리고진이 푸틴과 직접 접촉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그가 분노와 반대 의견을 표현할 수단이 이처럼 공개적인 것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그너그룹이 지난해 봄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초기에는 러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나, 크렘린궁이 프리고진의 야망을 감지한 이후로 상황이 바뀌었을 것이란 추측도 나왔다.
마흐넨코는 "프리고진이 전쟁을 이용해 경제적·정치적 자산을 축적하려고 했고, 크렘린궁은 그의 영향력을 축소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해임된 군 지도부가 바그너그룹에 합류한 것을 두고 프리고진은 권력 입지가 강화된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이는 크렘린궁이 바그너그룹을 차지하려는 전주곡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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