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너 어디까지?…예능 원작도 웹툰!
제작자와 수용자 모두에게 검증된 IP
빅데이터로 ‘취향 저격’ 예능 만들 수 있어
<신과 함께> <이태원 클라쓰> <신성한, 이혼> <지옥>의 공통점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드라마라는 점이다. 최근엔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웹툰의 줄거리와 설정, 주요 장치 등을 예능 프로그램에 녹여내거나 웹툰 그 자체를 예능으로 만든 것이다. 이미 인기가 검증된 웹툰이라는 점, ‘빅데이터’로 이용자 기록을 분석해 ‘취향 저격’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웹툰의 변주는 더 다채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엔터의 <플레이유 레벨업: 빌런이 사는 세상>은 유재석이 홀로 게임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설정은 인류 최약체로 불리던 주인공이 지구를 구할 최강 실력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인기 웹툰·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 속 주요 장치에서 가져왔다. 유재석이 현실 세계에 숨은 빌런을 찾아내 포획에 성공하면 해당 빌런을 아군으로 소환할 수 있다. 모든 과정은 라이브로 진행된다. 시청자들은 실시간 채팅창으로 유재석과 ‘티카티카’를 주고받으며 미션 수행을 돕는다.
웨이브의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도 천계영 작가의 웹툰을 기반으로 만든 예능이다. 웹툰에는 반경 10m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하트가 뜨는 앱이 등장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설정을 고스란히 가져와 남녀 8명이 하트 쟁탈전을 벌이는 연애 리얼리티를 구현했다. 출연자들은 웹툰에 등장하는 ‘진실게임’ 장면을 재연하는가 하면, 프로그램 중간 중간 웹툰 그림도 등장한다.
K팝과 웹툰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예능도 등장했다. 최근 종영한 티빙의 <웹툰싱어>는 K팝과 웹툰의 스토리텔링을 합친 프로그램이다. 매회 K팝 가수들이 두 팀으로 나눠 각각 웹툰을 선정하고, 웹툰에 어울릴 만한 곡과 웹툰 속 명장면을 뮤지컬처럼 표현하며 경쟁한다. 웹툰 작가가 직접 출연해 자신의 웹툰 ‘공연’을 응원하고, 웹툰 관련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첫 회에서는 그룹 AB6IX와 오마이걸 효정이 나와 <지금 우리 학교는> 웹툰, 밴드 소란과 가수 효린은 <바른연애길라잡이> 웹툰을 주제로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이들의 무대를 두고 ‘웹툰을 찢고 나왔다’는 말도 나온다.
예능이 웹툰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카카오엔터가 기획한 국내 최초 버추얼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소녀 리버스>는 가상 아이돌이라는 예능 세계관을 웹소설, 웹툰으로 확장한 사례다. 웹소설 형태의 캐릭터 이야기 30편을 예능 프로그램에 앞서 선공개했고, 웹툰 <소녀 리버스 비하인드>도 제작됐다. 예능 프로그램의 부가 콘텐츠로 웹툰·웹소설이 나온 것이다.
해외 수출 사례도 있다. 2018년 연재된 웹툰 <머니게임>은 상금 448억원을 두고 8명의 참가자가 100일간 생존 경쟁을 펼치는 내용으로, 지난해 국내 웹툰 IP(지식재산권) 중 최초로 미국에서 웹예능으로 제작됐다.
웹툰이 드라마를 넘어 예능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아예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작하는 웹툰 작가들도 있다.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김규삼 작가는 지난달 네이버 행사에서 “요새 들어서는 신작을 구상할 때 영상화를 염두에 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넓은 독자층에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D.P>의 김보통 작가는 지난 3월 한국콘텐츠진흥원 행사에서 “웹툰은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아주 적은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다”며 “웹툰을 하나 만들어두면 프리퀄, 시퀄, 스핀오프, 영화, 후속 웹툰, 드라마, 뮤지컬, 최근엔 창극으로까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웹툰의 장르 전환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배경에는 웹툰이 제작자와 수용자 양쪽에서 ‘검증된 IP’라는 점이 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콘텐츠 시장에서 인기있는 웹툰은 이미 대중의 ‘테스트’를 거쳐 ‘합격’한 작품들이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수용자 입장에서는 이미 본 웹툰을 다시 즐기려는 욕구가 채워지는 동시, 어떻게 바뀌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져 프로그램 선택 확률이 높아진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11일 “웹툰의 변주는 대중성이 확보된 하나의 원천 IP를 다양한 장르로, 혹은 마블처럼 같은 장르 내에서 시리즈로 확장하는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일환”이라며 “특히 웹툰은 어떤 사람들이 어느 대목을 좋아하는지 등 빅데이터가 남는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취향 저격’함으로써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볼 게 너무 많아 선택이 오히려 어려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서 이미 접했던 재미있는 웹툰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다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웹툰의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웹툰 IP의 다양한 활용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큰 수익을 가져오는 단계는 아니다. 이남수 키움증권 연구위원은 최근 ‘K웹툰 성장 시나리오’ 보고서에서 “웹툰의 원천 IP 활용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나, 원천 IP 수준에서는 수익성 기여가 크지 않기에 기획 단계부터 원작 및 2차 판권에 대한 다양한 유통 전략을 적극적으로 개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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