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래퍼 목소리로 만든 커버곡…미국서 'AI 음악' 논란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20여년 전에 숨진 유명 래퍼의 목소리를 되살려낸 '인공지능(AI) 음악'이 지난달 공개되면서 법적·윤리적 논쟁이 불거졌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22일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에는 래퍼 나스의 노래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에 래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이하 '비기')의 목소리를 입힌 영상이 올라왔다.
1997년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비기가 되살아난 것처럼 고품질로 음성이 구현된 이 영상은 조회수 39만8천여회와 '좋아요' 2만8천여개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AI로 '부활'한 비기의 노래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음악 프로듀서 팀발랜드는 비기의 목소리를 씌운 본인 곡을 들으며 감탄하는 영상을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이 영상의 조회수는 일주일 만에 100만회를 넘어섰다.
영상 속에서 팀발랜드는 흥겹게 리듬을 타며 "나는 언제나 비기와 함께 작업해보기를 바랐는데 오늘까지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힙합 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역사적인 작업'이라고 열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기의 목소리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고 이상하다는 감상도 있다.
팀발랜드는 일각의 비판을 이해한다며 자신의 의도는 돈을 벌자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AI로 되살린 옛 가수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이야기와 기억이 담긴 예술작품 감상에 비유했다. 팬들과 그들이 그리워하는 옛 가수가 AI 기술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좀 더 일반화해보면 문제는 한층 복잡해진다. 죽은 가수의 목소리를 동의 없이 사용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지, 고인 본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등 우려가 나온다고 WP는 짚었다. AI로 만든 음악이 '진짜'인지, 그것을 예술로 볼 수 있는지도 쟁점이다.
다만, 팀발랜드는 이런 'AI 음악'에 팬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곧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죽은 가수의 생일을 기념하는 식의 존중을 담은 작업이나 일회성 발매 같은 방식이라면 괜찮지 않냐는 것이다.
틱톡 팔로워 200만명을 보유한 프로듀서 저스틴 베르나데즈는 몇 달 전부터 AI 음악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계정에는 드레이크, 브루노 마스, 리아나(리한나) 같이 살아있는 가수의 목소리를 모방한 영상도 있지만 마이클 잭슨이나 비기 등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제한 트랙도 올라와 있다.
팔로워들의 반응은 윤리적 고민으로 연결되곤 한다.
베르나데즈는 "'이건 맞지 않은 것 같다'며 죽은 이들을 좀 쉬게 해주라는 사람도,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영원히 살 수 있게 됐다'는 정반대의 사람도 있다"며 "몹시 어렵다"고 했다.
음반사들엔 현실적인 문제기도 하다. 지난달 유명 싱어송라이터 더 위켄드와 힙합 스타 드레이크의 신곡으로 소개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를 모았던 '허트 온 마이 슬리브'가 실은 이들의 목소리를 'AI 버전'으로 그럴듯하게 합성한 가짜 노래로 밝혀진 일이 대표적이다.
두 가수의 소속사인 유니버설뮤직의 요청으로 이 곡은 음악 플랫폼에서 삭제됐지만 틱톡에서 조회수 1천500만회, 스포티파이에서 스트리밍 60만회를 기록하는 등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생길 가능성이 열린 셈이기도 하다.
현행 미국 법에서 AI가 만든 작품의 소유권과 저작권은 아직 불분명한 영역이지만 목소리 자체는 일반적으로 저작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소셜미디어 시대가 본격화하고 AI 생성 음악이 인기를 끌면서 흑인 등 원래부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아티스트들이 더 무시당할 위험도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WP는 전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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