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레모 가요제’가 K-POP에 시사하는 것들 [임형주의 컬처코드-K]
‘볼라레~ 우우~ 칸타레~ 우우우~.’
후렴구가 인상적인 이 노래는 일명 ‘볼라레(Volare)’라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국민가수 도메니코 모두뇨(Domenico Modugno)의 대표곡 ‘넬 블루, 디핀토 디 블루(Nel Blu, Dipinto Di Blu)’다. 이 곡은 이탈리아의 대중음악으로 대변되는 ‘칸초네(Canzone)’를 전 세계적으로 알린 가장 큰 기폭제가 된 곡이다.
이 노래가 바로 지난 1958년 8월 미국의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비영어권 노래로는 역대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이탈리아 대중가요 최초의 빌보드 1위곡이기도 하다. 생소했던 칸초네는 이후 전 세계를 발칵 뒤집었다. 이 노래가 수록된 LP 음반은 발매와 동시에 미국 내에서만 2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지금까지 전 세계 200여개국에서 1800만장이라는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하며 진정한 ‘스테디셀러’에 올라섰다.
어디 이뿐인가. 이 노래는 미국 최고 권위의 시상식으로 자리 잡은 제1회 그래미어워즈(1959년)의 주요 부문인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와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를 모두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비영어권 노래가 두 개의 주요 상을 석권한 것은 그래미 65년 역사상 이 노래가 유일하다.
이탈리아는 단 한 곡의 노래를 통해 ‘이미지 쇄신’을 이뤘다. ‘오페라의 종주국’에 갇힌 보수적인 음악의 나라라는 ‘갑갑한 이미지’를 훌훌 벗어던졌다. 그 위에 새로 덧댄 것은 그들 고유의 또 다른 문화였다. 자신들의 대중음악 장르인 ‘칸초네’를 1960~70년대 세계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주인공으로 올려놓으며 ‘소프트파워’의 저력을 보여줬다.
이 사례는 ‘문화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준다. 잘 만든 노래 한 곡이 수백, 수천개의 제조공장을 능가하는 수출 효자품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1958년에 말이다. 이탈리아 칸초네가 세계무대에서 일찌감치 조명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넬 블루, 디핀토 디 블루’가 등장한 배경과 관계가 있다.
이탈리아에는 72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제 음악제가 존재한다. 바로 1951년 이탈리아 북부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산레모에서 시작된 ‘산레모 가요제’다. 이 곡 역시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이 가요제가 창설된 배경 자체가 흥미롭다. 자국 고유의 음악 장르인 ‘칸초네’를 세계에 알리고 부흥하기 위해 태어났다. 1958년 대회에 참가한 도메니코 모두뇨가 ‘넬 블루, 디핀토 디 블루’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이후 가요제에선 무수히 많은 전설적 가수, 성악가, 팝페라 스타가 나왔다. 이바 자니키(Iva Zanicchi), 에로스 라마조티(Eros Ramazzotti), 라우라 파우시니(Laura Pausini),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 일 볼로(Il Volo) 등이다.
역사가 쌓일수록 ‘산레모 가요제’의 권위는 높아졌다. 이 가요제에서의 입상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미주, 아시아 등 전 세계 스타로 자리 잡는 발판이 됐다. ‘산레모 가요제=월드스타 등용문’이라는 공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동양인 최초 산레모 정복한 한국인 테너
산레모가요제는 유달리 한국과 인연이 없었다. 전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마다 한국인 성악가들이 포진해 “유럽 오페라극장은 한국인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대임에도 콧대 높은 이탈리아 가요제의 벽을 넘진 못했다.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였다. 2022년 2월 산레모가요제에서 72년 역사를 뒤집은 사건이 생겼다. 동양인 최초의 우승자가 나온 것이다. 팝페라 테너 박종수(예명 HUNK TENOR·34)다. 그는 ‘2022 산레모가요제’의 ‘뉴탤런트’ 부문에 참가해 30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게다가 성인가요상(Premio Senior)까지 받으며 2관왕이 됐다. 대회 역사상 동양인 최초의 산레모 정복이었다.
‘노래의 나라’로 불리는 이탈리아 중심에 태극기를 꽂은 박종수는 부산대 음악학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국립음악원 석사 과정을 밟았다. 촉망받는 성악도로 성장했지만 다른 전공자에 비해 시작이 다소 늦은 편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즐겨 듣던 가요를 피아노로 연주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동네 피아노학원에 갔다가 성악을 하게 됐다. 이후 성악에 점점 매료돼 2014년 대학 졸업 후 ‘성악의 본고장’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을 떠났다.
가정환경이 어려웠던 탓에 유학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성공하기 전엔 돌아가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밀라노 베르디국립음악원 석사 과정 졸업 후 현지에서 관광가이드, 방송 촬영 코디네이터, 보조 사진작가 일을 하며 ‘생계형 음악가’로 생활을 이어갔다. 말이 좋아 ‘생계형 음악가’이지, 노래 연습에 매진할 수 없었다. 음악을 들으며 일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일 뿐이었다.
다른 동기나 선·후배처럼 현지 콩쿠르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때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팬데믹이 닥쳤다. 관광가이드 등 부업으로 하던 모든 일이 여의치 않았다. ‘노래 인생도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가 싶은 마음’에 좌절감과 함께 결국 6년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필자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국에서 공연 실황 사진촬영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던 박종수는 어느 날 필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의 노래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냈다. 팬이자 성악계 후배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영상을 받고 무척 놀랐다. 시원시원한 발성과 남성적인 강인함이 담긴, 국내에선 보기 드문 테너였기 때문이다. 노래를 듣고 크게 감명받아 그에게 답장을 보내 서울에서 만나자고 했다. 서울 시내 호텔 중식당에서 탕수육을 사주며 그에게 “알토란 같은 뛰어난 재능을 왜 썩히냐. 다시 무대로 돌아오라”며 산레모가요제 도전을 권유했다. 큰 욕심 없이 산레모가요제에 출전한 박종수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지금은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등을 수놓고 있으며, 이탈리아 뮤직페스티벌에 초청되는 등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산레모가요제 우승 부상으로 얻은 인터내셔널 데뷔 싱글 앨범 ‘소리디(Sorridi)’를 발매해 세계 음악계에서도 주목받았다.
‘산레모 가요제’와 같은 국제적 명성의 가요제 육성해야
산레모가요제는 새로운 스타 탄생의 장이자 자국의 문화를 가꿀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하드웨어다. 칸초네의 세계적 인기와 박종수의 드라마틱한 스타 탄생을 보며 우리 문화계에도 ‘국제 음악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K-콘텐츠의 열광적인 인기에 힘입어 전 세계의 청소년은 K-팝 팬덤을 넘어 K-팝 그룹이 되기를 꿈꾸는 시대가 됐다. K-컬처 르네상스의 지속성을 위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가요계에서 K-팝 스타를 발굴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국내 굴지의 대형 기획사와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이 전부다. TV 오디션 역시 이젠 대형 기획사와 협업을 통해 이뤄진다. 게다가 기획사 소속 연습생이나 전·현직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이 대세를 이루다 보니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경우엔 K-팝 무대에 발을 딛기도 어렵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1977년 5월 28일 MBC는 해외 가수를 초청, 이른바 ‘가수들의 올림픽’을 슬로건으로 삼아 ‘서울 국제가요제’를 열었다. 참가 기준에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을 따로 두지 않았기에 다양한 가수와 노래가 출품됐다. 그중 기존 작곡가들이 다크호스로 등장해, 서울국제가요제는 세계 가수들의 등용문으로 빠른 기간 내 자리 잡았다.
세계화에 발맞춰 우리 대중가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글로벌 무대에 알리기 위해 시작된 서울국제가요제는 이후 국내에 비슷한 국제 가요제들을 나오게 한 시발점이 됐다.
하지만 막대한 개최비용으로 인해 1985년 대회가 한 차례 보류됐고, 이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개최 기념을 위한 대회를 끝으로 폐지하게 됐다.
서울국제가요제 수상자 중에선 이를 발판 삼아 이후 세계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뮤지션이 꽤 많다. K-팝의 DNA를 국제시장에 뿌리 내리게 하는 데에 가장 기본이 되는 토양과도 같은 역할에 서울국제가요제도 있었던 셈이다.
K-팝의 급성장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내실’이다. 해외 언론에선 K-팝의 폭발적인 성장속도의 이면을 들추며 ‘공장(Factory)형 아이돌’ 일색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선 더 많은 문이 열려야 한다. 하나의 색깔로 완성되는 기획사 중심의 발굴을 넘어서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트레이닝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준비된 ‘신인’들을 배출할 수 있는 ‘글로벌 등용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요구됐지만 현실적 차원의 경제적 지원 문제에만 함몰돼 중요 ‘포인트’를 놓쳤는지도 모른다.
아직 늦지 않았다. 방탄소년단(BTS)은 소위 대형 기획사가 아닌 ‘흙수저 아이돌’로 출발했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로 세계 팝음악시장을 정복했다. 이 역할은 더 많은 영역에서 할 수 있다.
국내에도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가 존재한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가요제로 탈바꿈해 이 안에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재, 나아가 다양한 인종의 뮤지션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 꽃 피워야 한다.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시대적 소명’이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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