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했던 그 여자의 일생…신간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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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魯迅.1881~1936)은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대문호다.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파람북)는 문인·사상가·혁명가로 추앙받는 루쉰이 아니라 그 뒤에 늘 가려져 있던 그의 본처 주안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부인은 태어날 때부터 총명하고, 바느질과 자수에 능숙했으며, 예법을 잘 지켜 부모가 손바닥 위의 구슬처럼 사랑했다. 그런 까닭에 사위를 고르는데 지나치게 까다로워 스물여덟 살이 되어서야 같은 마을의 저우위차이(周豫才·루쉰의 자)에게 시집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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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루쉰(魯迅.1881~1936)은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대문호다. 중국의 근대문학이 루쉰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아큐정전'이나 '광인일기' 같은 단편소설이 국내에서는 유명하지만, 루쉰은 수필부터 시·소설·강의록까지 수많은 장르에서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성공한 남성의 뒤에는 자신을 희생한 현모양처나 남편을 괴롭힌 악처(소크라테스나 톨스토이의 경우 등)가 있기 마련인데, 루쉰의 경우는 좀 달랐다. 그는 아내 주안(朱安)을 유령 대하듯 '없는 사람' 취급했다.
주안은 몸집이 작고 얼굴이 길었다. 전족(纏足)을 하고 있어 걸을 때 살짝 비틀거렸다. 28세에 결혼해 이튿날부터 남편과 각방을 썼고, 하루에 세 마디 이상 나누지 않았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곧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았지만, 시어머니와 세 명의 시동생을 무려 37년간 살뜰히 챙겼다.
늙어서는 자주 아팠다. 신장병과 폐병을 앓았고, 심각한 위장병에도 시달렸다. 게다가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걸을 때 불편함을 느꼈다. '천고의 어려움 중에 죽기가 가장 어렵다'는 옛말이 그녀에게 딱 맞았다.
말년에는 남편의 연인이었던 쉬광핑(許廣平)이 보내주는 돈에 의지해 연명했다. 죽어서는 남편 곁에 묻히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이루지 못했다. 한 묘지에 임시로 매장됐으나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에 의해 무덤마저 훼손됐다. 그의 시신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박복한 삶이다.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파람북)는 문인·사상가·혁명가로 추앙받는 루쉰이 아니라 그 뒤에 늘 가려져 있던 그의 본처 주안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상하이 루쉰기념관 연구원인 차오리화가 편지와 사진, 글 등 여러 기록을 토대로 주안의 삶을 복원했다.
주안은 쓸쓸함이란 말조차 꺼내기 힘든 삶을 살았다. 루쉰은 첫 소설집 '외침' 서문에서 "추억이라는 것은,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지만, 때로는 사람을 쓸쓸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쓴 바 있다. 루쉰에 따르면 주안의 결혼생활은 추억 없는, 즐거움 없는, 쓸쓸함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삶도 개척해내지 못했다. 고달팠지만 평생 시댁과 남편 주변을 서성였다. 한마디로 그녀의 삶은 그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전족이라는 시대의 문화에 얽매여 평생 종종거렸던 그녀의 발처럼.
그래도 단 한 번쯤은 반짝거렸던 '화양연화' 같은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부인은 태어날 때부터 총명하고, 바느질과 자수에 능숙했으며, 예법을 잘 지켜 부모가 손바닥 위의 구슬처럼 사랑했다. 그런 까닭에 사위를 고르는데 지나치게 까다로워 스물여덟 살이 되어서야 같은 마을의 저우위차이(周豫才·루쉰의 자)에게 시집갔다."
김민정 옮김. 408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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