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속구 혁명의 빛과 그림자…빠르다고 최고는 아니다
강속구의 시대다. ‘강’을 넘어 ‘광’으로 가고 있다. 저스틴 벌랜더(뉴욕 메츠)는 이에 대해 “야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를 이끄는 것은 속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더 빨리, 더 많이 강속구를 던지고 있다. 메이저리그 분석 자료를 보면 2008년에는 평균 시속 95마일(152.9㎞)을 던지는 투수가 전체 4.82%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9.14%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아롤디스 채프먼(캔자스시티 로열스)이 메이저리그 최고 시속인 105.8마일(170.3㎞)의 공을 던졌던 2010년 단 7명만이 100마일(160.9㎞)이 넘는 공을 던졌다면, 2018명에는 29명이나 ‘100마일 클럽’에 가입했다. 2008년 196차례 있던 시속 100마일 투구는 2018년 1320차례로 7배가량 늘어났다.
당뇨 앓는 선수가 시속 163.6㎞ 공 던져
빠름, 빠름의 시대는 그 속도만큼이나 눈 깜짝할 사이에 도래했다. 시속 100마일의 공은 투구판에서 타석까지 0.4초 이내로 날아가는데 눈 한 번 깜빡이면 공은 이미 포수 미트에 꽂혀 있다. 조던 힉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당뇨를 앓고 있음에도 2018년 데뷔전에서 시속 101.6마일(163.5㎞)의 공을 던졌다. 그는 채프먼 이후 처음으로 시속 105마일(169.1㎞)의 공도 꽂아넣었다.
패스트볼만 빨라진 게 아니다. 조안 두란(미네소타 트윈스)이 2022년 좌타자 앨릭스 버두고(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던진 공은 버두고의 몸 쪽에서 휘어지며 떨어졌는데 시속 100.8마일(162.2㎞)이 찍혔다. ‘스플링커’(스플리트+싱커)로 불리는 이 공은 시속 100마일을 넘긴 메이저리그 역대 최초의 오프스피드(변화구) 공이었다.
2022시즌 두란의 포심패스트볼(검지와 중지를 야구공의 실밥을 가로질러 잡아 던지는 구종) 평균 시속은 100.7마일(162.1㎞). 커브는 평균 시속 87.7마일(141.1㎞)을 자랑한다. 참고로 2022시즌 케이비오(KBO)리그 전체 투수(외국인 선수 포함)의 패스트볼 평균 시속은 143.6㎞였다. 측정 방법에 차이가 있겠지만 KBO리그 투수들의 속구 속도만큼 날아오는 커브를 두란이 던진다고 하겠다. 2022년 기준 메이저리그 포심패스트볼 평균 시속은 151.2㎞(93.9마일), 일본프로야구(NPB) 속구는 평균 시속 146.1㎞(90.8마일)였다.
국내 투수들도 마냥 느린 것만은 아니다. 한화 이글스 2년차 투수 문동주(20)는 2023년 4월12일 기아(KIA) 타이거즈전에서 박찬호를 상대로 시속 160.1㎞(99.5마일)의 공을 던졌다. 레다메스 리즈 같은 외국인 투수가 KBO리그에서 시속 160㎞ 이상의 공을 던진 적은 있지만 국내 투수가 시속 160㎞ 이상의 공을 뿌린 것은 문동주가 처음이다.
한화 이글스의 새내기 투수 김서현은 데뷔 첫 등판(2023년 4월19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최고 시속 157.9㎞(98.1마일)의 공을 꽂아넣었다. KBO리그 국내 투수 역대 네 번째로 빠른 공이다. 리그 최고 에이스로 평가받는 안우진(키움 히어로즈)은 2023년 평균 구속 154.2㎞(95.8마일)의 포심패스트볼을 던지고 있다. 2022년(시속 152.6㎞)보다 1.6㎞가 더 빨라졌다.
96마일 이상일 때 부상 명단에 오를 확률 27% 높아져
투구 속도의 증가는 야구산업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예전에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어깨와 팔의 세기로만 던졌다면 지금은 더 정밀한 체형·체질 분석으로 구속을 드라마틱하게 끌어올린다.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선수 훈련용 APEC(선수 경기력 향상 센터)을 설립한 보비 스트루페는 미국 방송 <시비에스>(CBS) 인터뷰에서 “마이클 코펙(시카고 화이트삭스)이 오프시즌에 여기에서 훈련해 한번에 시속 6마일(9.7㎞)을 향상시켰다”고도 자랑했다. 코펙의 평균 구속은 현재 시속 97~98마일에 이른다. APEC은 맞춤 강도와 회전력에 초점을 둔 컨디셔닝 프로그램을 결합해 구속을 한껏 끌어낸다고 한다. 스트루페는 “생체역학적으로 112마일(180.2㎞), 113마일(181.9㎞)까지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 아마추어 투수들의 구속이 오른 것도 사설 아카데미에서 개인 과외를 받는 것과 무관치 않다.
강속구는 타자와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데 매력이 있다. 실제 시속 92마일의 공에 대한 피안타율은 0.283에 이르지만, 시속 101마일의 경우 피안타율이 0.198에 불과하다. 구속 차이가 10마일(16.1㎞) 안팎 차이가 나는 슬라이더나 체인지업을 강속구와 섞어 던질 경우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난다. 하지만 강속구는 양날의 칼과도 같다. 부상 위험 때문이다.
야구통계 분석가 제프 지머먼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메이저리그 투수의 부상과 패스트볼 속도의 연관성을 분석했는데, 시속 96마일 이상을 던진 투수는 다음 시즌 부상자명단(DL)에 오를 확률이 27%였다. 시속 90~93마일의 공을 던지는 투수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였다. 또한 시속 96마일 이상을 더 많이 던진 투수가 더 오래 부상자명단에 있기도 했다.
<미국 스포츠의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Sports Medicine)의 연구는 더 자세히 강속구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2010년 연구에서 3시즌 동안 프로선수 23명을 추적 관찰했는데, 부상 없는 투수 14명의 평균 구속은 85.22마일(137.1㎞)이었다. 이에 비해 부상한 9명의 평균 구속은 89.22마일(143.6㎞)이었다. 이 중 최고 구속을 기록한 3명은 모두 ‘토미 존 서저리’(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가 필요했다. 표본이 적지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관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구 안 된 강속구가 더 위험해
책 <야구란 무엇인가>(레너드 코페트)에서는 피칭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투구는 인체 구조상 매우 부자연스러운 동작이다. 팔은 어깨에서 밑으로 매달려 흔들거리고 팔꿈치는 안으로 굽는 게 자연스러운 것인데 피칭은 그 반대 방향으로 많은 운동량을 부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피칭은 근육과 인대, 관절, 심지어 특정 부위의 뼈에까지 엄청난 부담을 주는 행위다.”
KBO리그에서는 하루 평균 한 구단당 4.54명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근육·인대·관절을 뒤틀면서 평균 67개(선발/불펜 구분 없음)의 공을 던진다. 그저 강속구만을 기준으로 이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투수가 리그에서 살아남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강속구는 그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제구된 느린 공보다 오히려 제구 안 된 강속구가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김양희의 인생 뭐, 야구: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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