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가리지 않는 전쟁…하르툼이 불타네

정인환 기자 2023. 5. 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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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한 정부군 vs 다갈로 신속지원군… “수백만 인도적 재난 직면”
2023년 5월1일 수단 정부군과 신속지원군 간 교전이 벌어진 수도 하르툼 도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군벌 간 무력 충돌로 고립된 수단 교민 28명이 우리 정부의 ‘프라미스’ 작전을 통해 4월25일 오후 4시 무사히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 대통령실에 따르면 작전명 프라미스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의미다.”

2023년 4월28일 ‘대한민국 전자정부 누리집’(korea.kr)에 공개된 글의 일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는 건 국가의 의무다. 대통령이 곧 국가란 뜻인가? 불과 4년 전까지 그런 생각을 가진 인물이 수단을 통치했다.

쿠데타와 함께 시작된 ‘수단의 봄’

탱크가 거리를 점령했다. 전투기가 미사일을 퍼붓는다. 도심 곳곳에서 시꺼먼 연기가 치솟는다. 포탄으로 파괴된 건물이 잔해로 주저앉은 거리를 자전거를 탄 주민이 천연스레 지난다. <알자지라> 방송이 연일 전하는 수단 수도 하르툼의 초현실적 풍경이 지독히 낯익다. 예로부터 아랍인이 ‘빌라드 앗수단’(검은 사람들의 땅)이라 부른 곳, 지금 수단이 처한 안팎의 상황도 낯익긴 마찬가지다.

홍해 너머 아라비아반도가 지척인 동아프리카에 자리한 수단은 한국보다 약 19배 큰 땅에, 한국보다 적은 인구(약 4500만 명)가 사는 나라다. 국토를 가르는 청나일·백나일강의 축복 속에 농업이 성하고, 추정 매장량 15억 배럴(세계 25위)을 자랑하는 원유를 비롯해 금·구리·철광석·우라늄 등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그럼에도 인구 10명 중 3명꼴로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건, 어디서나 그렇듯 ‘정치’ 탓이다.

19세기 말부터 이집트와 영국의 공동통치(사실상 영국령) 아래 있던 수단은 1952년 왕정을 무너뜨린 이집트혁명과 함께 독립 기회를 잡았다. 이집트와 수단의 압박에 밀린 영국은 결국 수단 통치권을 포기했고, 수단은 1956년 1월1일 독립공화국을 선포했다. 이후 역사는 식민지배를 경험한 여느 아프리카 국가와 마찬가지였다. 1958년부터 2021년까지 수단에선 일곱 차례 ‘성공한 쿠데타’와 다섯 차례 미수에 그친 쿠데타가 벌어졌다.

1989년 6월30일 독립 뒤 다섯 번째 쿠데타가 성공했다. 사디크 마흐디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를 붕괴시킨 건 육군 대령 오마르 바시르(당시 45살)였다. 그는 세 차례의 쿠데타 시도를 버텨냈다. 2000년대엔 중앙정부의 오랜 차별에 맞선 서부 다르푸르 지역 주민들의 저항을 무참히 짓밟으며 권력을 더욱 다졌다.

‘아랍의 봄’이 다 지나도록 미동도 없던 수단에서도 2018년 12월19일 물가 폭등 등으로 성난 민심이 거리를 달궜다. 들불처럼 타오른 분노는 독재자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바시르 정권은 이듬해 4월11일 또 다른 쿠데타로 무너졌다. 짧게 끝날 ‘수단의 봄’의 시작이었다.

부르한 vs 다갈로, 바시르의 ‘덫’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23년 4월17일 비공개회의 뒤 전한 이후 과정을 보자. 바시르 정권 붕괴 이후 수단 군부는 과도군사위원회를 구성해 정국을 장악했다. 이어 야권과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시민사회의 연대체인 ‘수단의 자유와 변화를 위한 힘’(FCF) 쪽과 협상해, 같은 해 6월 과도주권위원회를 구성했다. 8월엔 경제관료 출신 압달라 함독을 총리로 하는 과도정부도 출범했다.

하지만 군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21년 10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과도정부를 몰아내고, 과도주권위가 다시 전권을 장악했다. 앞선 쿠데타의 두 주역이 다시 전면에 나섰다. 육군 중장 압델 파타 부르한과 군벌 출신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다. 부르한은 수단 정부군(SAF)을, 다갈로는 준군사조직인 신속지원군(RSF)을 이끌고 있다.

수단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부르한은 전형적인 엘리트 군인이다. 다갈로는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정규교육을 받은 기록이 없다. 1960년생으로 확인된 부르한과 달리 다갈로의 출생연도는 1973~1975년 사이로 추정될 뿐이다. 하르툼의 기득권 세력이 다갈로를 ‘촌뜨기 군벌’ 취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둘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째, 둘 다 2000년대 중반 다르푸르 학살 당시 현장을 지휘했다. 특히 다갈로는 2003년께 RSF의 전신인 ‘잔자위드’ 민병대를 이끌고 온갖 반인도적 범죄를 주도하면서 악명을 떨쳤다. 둘째, 예멘 내전 당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에 맞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를 지원한 것도 공통점이다. 특히 다갈로는 병력을 대거 파병해 실전을 경험하게 하는 한편 ‘수익’까지 챙겼다.

두 번째 쿠데타는 역풍을 불렀다. 군부의 권력 강화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민정 이양을 위한 논의가 재개됐다. 그사이 부르한은 바시르 정권의 조력자이던 이슬람주의 세력과 관계 회복을 도모했다. 다갈로는 스스로를 ‘개혁가’로 포장하며 부르한과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두 쿠데타의 주범 사이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독재자 바시르가 남겨놓고 간 ‘덫’이기도 했다.

500명 이상 사망, 수십만 난민 발생

바시르는 집권 기간 내내 군과 정보기관 등 권력기관을 분할통치했다. 특히 자신을 겨냥한 쿠데타에 대비한 안전장치로 삼기 위해 RSF를 군 지휘계통에서 철저히 독립적으로 활동하게 했다. 다갈로가 다르푸르에서 금광을 운영하며 막대한 자금과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2019년 4월 바시르 정권 붕괴 직전 쿠데타 세력에 가담한 다갈로는 경제 안정을 주문하며 수단중앙은행에 10억달러를 지원했다. 당시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 돈을 어떻게 구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외국에서 전투에 참여한 병력의 수당과 금광을 비롯한 기타 투자로 마련한 자금”이라고 밝혔다.

수단 분쟁이 당사자인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왼쪽 둘째) 신속지원군(RSF) 지휘관이 정부군 수장인 압델 파타 부르한(왼쪽 세번째) 중장과 함께 2022년 12월5일 민정 이양과 관련한 협정 체결식에 참석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국제사회의 중재 속에 2022년 12월5일 군부와 FCF는 2년 안에 선거를 통해 민간으로 권력을 넘기는 내용을 뼈대로 한 ‘수단정치기본협정’을 체결했다. 과도주권위 의장 부르한은 마지못해, 부의장 다갈로는 기꺼이 협정서에 서명했다. 협정은 RSF를 정규군으로 인정하면서도, 과도기간에 군사령관이 아닌 민간인 국가수반의 직접 지휘를 받도록 했다. 또 RSF의 정부군 편입 시한도 추후 협상으로 정하게 했다. 다갈로 처지에선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시간을 번 셈이다. 부르한과 다갈로 사이 불신이 깊어졌다.

2023년 1월8일 아프리카연맹(AU) 등의 중재 속에 민간 과도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최종 협상이 시작됐다. 2~3월 SAF와 RSF 모두 수단 전역에서 대대적인 신병 모집에 나섰다. 갈등이 증폭됐다. 부르한은 과도주권위 해체와 과도군사위 재설치를 제안했다. 다갈로의 공식 직함(과도주권위 부의장)을 박탈하려는 시도로 해석됐다. 분위기가 격해졌다.

민간 과도정부 구성 협상은 예정된 시한(4월1일)을 두 차례 넘긴 뒤 결국 무기한 연기됐다. 협상의 막판 쟁점은 RSF의 정부군 편입 시점이었다. 부르한은 2년, 다갈로는 10년을 주장했다. 부르한이 바시르 정권 세력과 결탁한 것으로 판단한 FCF 쪽은 다갈로 손을 들어줬다. 양쪽이 무력 충돌에 대비하면서 정세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4월13일 RSF 쪽이 이집트 공군 병력이 주둔한 북부 메로에 공군기지 부근에 병력을 배치했다. SAF 쪽은 허가받지 않은 병력 이동을 공개 비난하고 철수를 명했다. 사실상 최후통첩이었다. 4월15일 이른 아침 하르툼 남부 소바 지역에서 첫 총성이 울렸다.

30년 철권통치를 휘두른 독재자 오마르 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왼쪽)이 2019년 8월19일 법정에 출두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수단 보건부는 교전 발생 18일째인 5월2일 현재까지 적어도 528명이 숨지고 4600여 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차드·에티오피아 등 인접국 국경지대에서 80만 명 규모의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이미 이집트 국경을 넘은 난민만 4만 명이 넘었다. 국제이주기구(IOM)는 다르푸르 서남부를 중심으로 이미 33만 명가량이 터전을 잃고 국내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고 추정했다.

“시민혁명 뒤 4년 만에 전쟁터로”

SAF 병력은 22만 명 안팎으로, 7만여 명 규모인 RSF를 압도한다. 하지만 훈련 상태와 장비 면에선 RSF가 우위를 점했다는 분석도 있다. SAF는 전통의 우방인 이집트를, RSF는 예멘 내전으로 끈끈해진 아랍에미리트를 뒷배로 삼고 있다. 부르한이 안마당인 하르툼에서 결국 승리하리라는 예측도 나오지만, 퇴각한 다갈로가 다르푸르를 기반으로 내전을 이어가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위기그룹(ICG)은 4월20일 낸 성명에서 “수백만 인구가 인도적 재난에 직면했지만, 양쪽 모두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외부 세력의 개입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단 태생 칼럼니스트 네스린 말리크는 4월23일치 영국 <가디언>에 이렇게 썼다.

“감히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가, 그 대가로 결국 벌을 받게 됐다. 그게 수단의 비극이다. 독재자를 몰아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은 쉽게 사그라지고 말았다. 지난 10여 년 세월 아랍 각국이 경험한 암울한 과정이 되풀이됐다. ‘아랍의 봄’을 만들어낸 국가 중 옛 권력이 더 잔혹한 모습으로 부활한 쪽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이집트가 그렇다. 최악의 상황은 내전으로 빨려들면서, 수많은 이가 목숨 걸고 국경을 넘어 난민으로 떠도는 경우다. 리비아와 예멘, 시리아가 그렇다. (…) 수탈과 학살로 점철된 바시르의 30년 독재를 무너뜨린 시민혁명 뒤 불과 4년 만에 하르툼이 전쟁터로 변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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