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은 '못난 남자' 전성시대
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악역이지만 악역이 아니다. 나쁜 짓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불쌍하거나 딱한 느낌이 앞선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들에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들의 일부다. 물론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있는 멋진 남자 캐릭터들도 있지만 오히려 욕을 먹거나 핀잔을 들으며 극의 화제성 중심에 있는 것은 오히려 이런 '못난 남자'들이다. 새로운 흐름이다.
시청률 고공행진을 시작한 JTBC 주말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도 '국민 욕받이' 캐릭터가 있다. 배우 김병철이 연기하는 서인호다. 서인호는 사실 천벌을 받을 캐릭터다. 의사의 꿈을 갖고 있는 차정숙(엄정화)에게 아이가 들어서게 해 그 꿈을 꺾었다. 그렇게 20년을 집안일만 하며 숨죽이고 살던 차정숙은 급성 간염 입원 후 꿈을 다시 피워올려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서인호는 자신의 첫사랑 최승희(명세빈)과도 아이를 가져 결국 그 아이가 자라 차정숙의 아이와 친구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도 그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의사가 되려는 아내가 불륜상태인 최승희와 같은 병원을 다닌다는 이유로 병원으로의 출근을 방해하고, 차정숙이 잘생긴 미남 의사 로이 킴(민우혁)과 잘 지내는 듯하자 오히려 이를 훼방한다. 극 특유의 코믹한 분위기 때문에 극악한 그의 캐릭터는 굉장히 찌질하게 바뀌었다. '못났다. 못났어'라는 말이 절로 나올만한 캐릭터를 완성한다.
지난 9일 막을 내린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종이달'에서는 멋진 남자 캐릭터가 있었다가 없어졌다. 오히려 모두 엉망진창이라고 해야 맞겠다. 극에 등장하는 주요 남자배역들이 극이 마지막으로 향하면서 모두 '밑천'을 드러냈다.
'종이달'은 숨 막히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주인공 유이화(김서형)가 자신을 구원해줄 것 같았던 윤민재(이시우)를 만나고 난 후 그를 위해 자신이 다니던 은행 고객들의 돈에 손을 대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당연히 남편 최기현 역의 공정환은 나쁜 남자를 연기한다. 과거 유이화의 집에 일을 해주던 집안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사사건건 모진 말을 하고 무시한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멋진 남자 주인공인 줄 알았던 윤민재의 변절이다. 영화를 꿈꾸는 학도로 갑갑한 유이화의 영혼을 구해주는 줄만 알았던 그는 유이화가 조건 없이 채워주는 돈의 힘에 눈이 멀어 중심을 잃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넘치는 돈에 만족한 모습을 보이더니, 유이화의 연락을 피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준다. 믿었던 남자의 변절은 유이화가 한국생활에 미련을 접고 해외에 도피하는 원인이 된다.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에서도 못난 남자들은 연달아 등장한다. 극 중 최강호(이도현)과 이미주(안은진)의 친구이지만 사사건건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방삼식 역 유인수가 그렇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나쁜 사례로 보이는 송우벽(최무성)과 오태수(정웅인)의 모습 또한 좀스럽기 그지없다.
ENA 수목드라마 '보라! 데보라'에서 치킨 프랜차이즈 재벌가의 후손이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이기적인 노주완을 연하는 황찬성 역시 돈과 권력이 있지만 인성은 이를 따르지 못하는 인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왜 이렇게 안방극장에서는 '못난 남자'들이 늘어났을까. 일단 여성서사가 많이 늘어난 드라마 지형의 변화로 보인다. 여성서사의 작품은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의 입장에서 풀어간다. 보통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입지가 제약되는 것은 남성중심적인 사회 시스템인 경우가 많다. 작가와 감독은 이러한 시스템을 대표하는 인물로 여성 악역보다는 남성 악역을 선호한다. 남성이 만들어놓은 견고한 벽이 사실은 보잘것없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파괴의 카타르시스는 커진다.
하지만 마냥 이들을 비정한 악역으로 그리는 것도 곤란하다. 그럴 경우 여성서사의 드라마는 젠더대결의 작품이 되고, 지금 시기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러한 대결구도는 제작자의 입장에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 인물들 중 일부의 문제를 시스템의 문제도 문제지만 개인적인 인격의 미비로 치환해 극 자체의 무거움과 비장함을 덜어낼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인물들이 블랙 코미디의 느낌으로 그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전적으로 드라마를 소비하는 계층이 남성보다는 여성, 10대나 20대 등 어린 나이보다는 사회의 시스템 한계를 더욱 실재적으로 절감하는 30대, 40대 이상으로 바뀌면서 생겨난 특징이다. 이들에게는 '못난 남자'를 보면서 더욱 주인공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이고, 드라마에 충성하게 하는 흐름이 생겨난다. 지금의 사회 분위기를 영민하게 이용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극악한 서인호를 코믹하게 그리는 '닥터 차정숙'의 경우와 같이 코믹한 분위기가 오히려 인물의 악함을 희석한다면 오히려 그것대로 문제다. 지금의 여성서사는 그래서 좀 더 다채로운 남성 캐릭터를 계발할 필요가 있다. '못난 남자'가 마냥 넘치는 일도 서사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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